트럼프 재편 후 뒤집기판결 이어져…펠로시 “대법관 임기 필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6대3의 완연한 보수 우위로 재편된 대법원이 29일 연방 차원의 낙태권에 이어 대학들의 소수 인종 우대정책에도 위헌 딱지를 붙였다.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tudents for Fair Admissions)이 소수인종 우대 입학 제도로 백인과 아시아계 지원자를 차별했다며 노스캐롤라이나대와 하버드대를 상대로 각각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법원은 각각 6대3, 6대2로 위헌을 판결했다.
정확히 현재 대법원의 이념 지형을 반영하는 구조다.
하버드 출신인 최초의 흑인 여성 대법관 커탄지 브라운 잭슨이 이해충돌로 하버드대 관련 판결에서 빠진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6대3의 동일한 흐름이다.
통상 보수와 진보가 5대4 정도의 균형을 유지하며 일부 중도파 인사를 포함해 어느 한 쪽이 비토하기 힘든 진용을 이어 온 미국 연방대법원이 보수 성향으로 확실하게 기울어진 것은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보수색이 짙은 길 고서치와 브렛 캐버노를 대법관에 차례로 임명한 데 이어 ‘진보의 아이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전 대법관이 2020년 암투병 중 별세하자 이 자리에 보수 성향의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을 임명해 결정적으로 현재의 6대3 구조를 완성했다.
이에 따라 현재 대법원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시절 임명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비롯해 이들 ‘트럼프 3인방’, ‘공짜 휴가’ 및 부인의 친트럼프 행보로 구설이 끊이지 않는 클래런스 토머스, 새뮤얼 얼리토 등 모두 6명의 보수 성향 대법관이 자리하고 있다.
진보 성향 대법관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직접 지명한 잭슨 대법관을 포함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발탁한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리나 케이건 등 3명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대법원의 이번 결정이 나오기 이전부터 미국 내에서는 일찌감치 판결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이 혼재했다.
지난해 낙태권 폐기 결정에서 확인됐다시피 이번에도 보수적 목소리를 낼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최근 흑인 유권자를 축소 대표한 루이지애나 선거구 획정에 연달아 제동을 건 것을 보면 법리 위주의 검토 끝에 탈 이념적으로 합헌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기대도 일부 제기됐다.
결론적으로 이변은 없었다.
양측은 각자 진영이 주장해 온 논지에서 벗어나지 않는 주장으로 판결문을 채웠다.
다수 의견을 집필한 로버츠 대법원장은 판결문에서 “학생은 인종이 아닌 개인으로서 경험에 근거해 평가돼야 한다”며 “많은 대학이 너무 오랫동안 그 반대로 행해왔고, 이에 따라 개인의 정체성을 가늠하는 시금석이 도전과 교훈, 기술이 아니라 피부색이라는 잘못된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는 이들 두 대학의 입학 프로그램이 “인종을 사용할만큼 충분히 객관적이지 않으며, 불가피하게 인종을 부정적 방식으로 이용했고, 인종에 대한 고정 관념과 연관돼 있다”고도 했다.
다만 그는 “이 의견이 인종 문제가 지원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지원자의 주장 자체를 고려하는 것에 대한 금지로 해석돼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반면 노스캐롤라이나대 판결에서 소수 의견을 집필한 잭슨 대법관은 “사회 주류가 구명줄을 거둬들이며, ‘모두에게 인종을 신경쓰지 않는 것’이 법적으로 공평한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며 “그러나 법적으로 인종이 무관하다고 한다 해서 삶이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 결정으로 인종차별이 사라지는 데 한층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됐다”며 “궁극적으로 인종을 무시하는 것은 이를 더 중요하게 만들 뿐”이라고 규탄했다.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하버드대 소수 의견에서 총체적 평가 시스템에는 소수자 우대 뿐 아니라 기여 입학도 포함된다고 지적했다.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간단히 말해서 인종은 훨씬 더 큰 입시 퍼즐의 작은 조각일 뿐이며, 대부분 조각이 소수 인종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면서 “이미 유리한 위치에 있는 인종 그룹이 인종의 제한적 사용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다는 법원의 주장은 허구”라고 지적했다.
보수 우위로 재편된 연방대법원에서 기존의 판례를 뒤집는 판결이 잇따르자 현행 대법원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진보 진영에서는 현재 9명인 대법관 정원을 확대하는 것을 비롯해 한 번 임명되면 종신직을 유지하는 현재 시스템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하고 있다.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은 지난 25일 MSNBC에 출연해 “대법관에게도 임기가 필요하다”며 한 번 인준을 통과하면 주기적 선출이나 윤리 심사 없이 종신직을 유지하는 대법관제도에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펠로시 전 의장은 대법관 확대에 대해서도 “링컨 대통령 시절 대법관을 9명으로 늘린 지 150년이 지났다”며 “이 문제는 집회에서 외치는 사안이 아니라 토론돼야 할 주제”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