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마지막 금요일, 몇 가정이 아미카롤라 폭포로 단풍구경을 갔다. 아미카롤라 폭포를 향해 가는 길은 단풍 든 가로수들이 찬란한 아침 햇살에 빛났다. 금메달을 따서 국위를 선양한 올림픽 선수가 서울에 입성할 때 연도에 늘어선 환영객들이 태극기를 흔들어 대듯이, 우리가 가는 길 양쪽으로 늘어선 키 큰 나무들이 노랗고 빨간 단풍 깃발을 흔들며 우리를 환영한다.
아미카롤라 폭포 정상에 오르기 전 중간에서 차에서 내려, 폭포를 따른 474 나무 계단의 일부를 걸어서 오르내리며, 많은 사람 속에 섞여 폭포를 올려다보고 내려다보며 폭포 소리도 듣고 사진도 찍었다. 폭포 계곡의 나무들은 단풍 들기 전에는 초록 일색이었으나 단풍이 들어 큰 나무들의 윤곽이 다른 색깔로 자신을 들어낸다.
폭포 계곡 물가의 나무들은 무성하다. 몇 사람이 팔 벌려 안아야 할 굵은 나무 줄기들이 여기 저기 있고 작은 나무들이 큰 나무 사이사이에 있다. 햇빛에 목 말라 위로 자라는 젓가락처럼 가는 나무들, 그 중엔 죽은 나무도 있다. 넝쿨들이 높이 올라가 뒤엉킨 속에 죽어가는 나무도 있다.
은퇴하고 조지아로 와서 사는 동안 래니어 호수 주변 등산길이나 쎄틀브릿지 공원을 걷는 동아리에 들어 정기적으로 공원을 걸었다. 공원을 걸을 때면 숲 속의 나무들을 많이 본다. 숲 속의 나무들은 햇빛을 향한 무한 경쟁을 하며 하늘로 뻗는다. 울창한 숲 속엔 큰 나무 보다 작은 나무 숫자가 훨씬 더 많다. 열매와 씨들은 계절마다 무수히 땅에 떨어지고 싹이 돋고 어린 나무들이 생긴다.
큰 나무도 늙으면 죽는다. 죽은 나무는 곤충들이 구멍을 뚫어 집을 만들기도 하고, 썩어가는 나무 토막에 초록 이끼가 덮혀 겨울에도 초록색이다. 큰 나무가 쓰러진 빈 공간에 작은 나무들 중에 큰 나무가 빈 자리를 차지하는 모습은, 옛날 부족사회의 추장이 죽으면 후계자가 자리를 메꾸는 과정과 비슷하다.
우리 일행은 폭포 정상에 있는 식당(Amicalola Falls Lodge & Restaurant)에 도착했다. 식당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산비탈이 먼 앞 산자락으로 멍석을 편 듯 광활하게 펼쳐졌다. 그 광활한 들판과 산이 모두 울긋불긋 단풍 한 폭으로 장엄하다. 단풍나무 몇 그루 보는 것 보다 장엄하다.
전망대 높이가 805 m, 바로 밑에서 펼쳐진 넓은 들녘이 앞 산자락으로 광활하게 이어져, 굴곡지고 광활한 단풍 바다가 된다. 전망대 보다 더 높이 올라가서 본다면 앞 산 넘어 산줄기들이 파도처럼 출렁거릴 것이다.
식당에 앉아서 통 유리창으로 내려다 보이는 광활한 단풍의 세상, 하늘로 이어진 단풍 멍석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고, 무성한 숲이 무언극으로 보여주는 지혜가 느껴진다. 사람이 심지도, 물주지도, 가지치기 않아도 숲은 스스로 무성하고, 가을이면 풍성한 단풍 숲이 장엄한 퍼레이드로 메시지를 전한다. 그 메시지가 단풍 구경 와서 볼 때 마다 우둔한 내게도 조금씩 이해되는 것 같다.
숲 속을 걸으며 보는 식물들 중에는 경쟁에서 지고 죽어가는 식물들이 더 많이 보이고, 길가 그늘에 선 그늘의 어린 나무들이 겨울 길거리에 누운 노숙자같이 시들어 가는 모습을 볼 때 불공평하고, 무질서하고, 몹쓸 세상이라고 불평하다가, 멀리 보이는 풍성한 단풍 숲을 보면 생각이 바뀐다.
아미카롤라 폭포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광대하고 풍요로운 단풍 숲이 늘 풍성하고 건강하기 위해서는 숲 속의 식물들이 치열한 경쟁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매년 씨를 만들어 뿌리고, 싹튼 수많은 어린 나무들은 경쟁을 통해 생존해야, 숲은 영원으로 생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숲이 없고 식물이 없으면 동물들은 먹이가 없어 살 수 없다. 식물은 탄소를 저장하고 산소를 대기 중에 품어낸다. 단풍은 낙엽을, 낙엽은 미생물 먹이와, 숲을 거름으로, 그리고 숲이 무성 함은 식물들 자신을 위해서도 동물들을 살리기 위해서도 필수가 아닌가! 그런 미션을 위해 식물들은 그들의 최선을 다하는 것 아닐까?
나무들 사이에 경쟁에서 죽어가는 식물들과 떨어져 쌓이는 낙엽들은 미생물들의 먹이가 되고, 미생물들은 더 큰 동물들의 먹이가 되어 먹이 사슬을 연결하고, 썩은 부분은 거름이 되어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 숲을 더 풍성하게 협조하지 않는가!
내가 살아온 과정에서 만난 문제들, 경쟁들, 억울한 일들 때문에 찌그러진 내 표정을 펴야 할 것 같다. 내가 살며 겪은 많은 고난은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연단이 아니었을까?
올해도 다행이 단풍이 한창인 아미카롤라 폭포 정상에 와서 거대한 단풍의 숲, 들판을 지나 하늘 끝까지 이어진 넓은 단풍의 벌판을 보며, 슬픔이 아니라 기쁨이, 원망과 불평이 아니라 감사가 느껴진다. 안으로는 무한 경쟁을 하지만, 늘 풍요로운 단풍의 퍼레이드의 의미를 앞으로도 더 알아 가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