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로 통하는 스페인. 그러나 뜨거운 심장을 가진 스페인의 도시는 세비야라 말하고 싶다. 1년에 3000시간이나 내리쬐는 세비야의 정열적인 태양 아래서 영혼과 정열의 춤인 플라멩코가 태어났고 투우도 이 지방에서 시작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세비야는 굵직한 역사와 예술 작품의 배경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이탈리아에 카사노바가 있다면 스페인에는 돈 후앙이 있는데 세비야는 돈 후앙의 출생지로 유명하다. 콜럼버스도 세비야의 황금시대를 열어젖힌 상징적인 존재다.
콜럼버스 이후 신대륙 대부분이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고 은을 비롯한 여러 자원이 유입되면서 16세기 스페인은 유럽 최강국으로 발돋움했다. 당시 신대륙의 물자가 세비야를 통해 쏟아져 들어왔으니 세비야는 스페인을 넘어 유럽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였다.
‘카르멘’은 19세기 세비야를 배경으로 경비병 돈 호세와 집시 여인 카르멘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카르멘이 일하던 담배 공장은 이제 대학교가 되었는데 댄 브라운이 그곳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던 중 ‘다빈치 코드’를 구상했다고 한다.
세비야의 명물은 스페인의 랜드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스페인 광장과 세비야 대성당을 꼽을 수 있다. 유럽을 여행할 때 흔히 마주치는 것이 성당이지만 세비야 대성당은 남다르다. 기존의 모스크를 개축한 성당은 세비야의 엄청난 부를 만천하에 과시할 웅장하고 아름답고 화려한 고딕식 대성당으로 증축되어 1528년에 완공되었다.
대성당은 규모로 보면 당시 세계 최대였고 오늘날에는 세계 세 번째이다. 이곳에 콜럼버스의 관이 안치되어 있다. ‘죽어서도 절대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는 콜럼버스의 유언에 따라 네 명의 왕이 공중에 관을 메고 있다.
어느 CF에서 배우 김태희가 붉은 드레스를 입고 플라멩코를 추던 곳은 스페인 광장이다. 이 광장은 스페인의 건축가 아니발 곤살레스가 총책임자로 1913년 시작해 1916년에 완공되었다. 반원형 모양으로 길게 늘어선 건물과 회랑은 바로크 양식과 신고전주의 양식이 혼재되어 있다.
건물의 1층 벽면은 한 칸 한 칸 구획되어 있는데 각각의 공간은 다양한 색깔의 아줄레주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구획된 공간마다 벽에는 스페인의 도시 이름과 그 도시에 얽힌 역사적 사건이, 바닥에는 각 도시의 지도가 그려져 있다.
세비야를 한층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는 단연 플라멩코다. 세비야에는 크고 작은 플라멩코 공연장이 즐비하다. 무용수 바일레와 노래하는 가수 칸테, 기타리스트 토케가 짝을 이뤄 무대에 오르는데 정말이지 플라멩코만큼 숨 가쁘게 열정적인 춤사위는 평생 본 적이 없다. 노래에도, 기타 선율에도, 춤에도 삶의 애환이 애잔히 녹아 있다.
세비야가, 세비야의 플라멩코가, 가장 스페인다운 진짜 스페인을 보여준다. 여행자들의 마음 한구석을 ‘툭’ 하고 건드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