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이민자적인 것이 가장 미국적인 것… 교외도시 고정관념 탈피, 다양성 확장 주력”
존 박(한국명 박현종) 브룩헤이븐 시장 당선자가 오는 8일 올해 미 동남부 역사상 최초의 한인 시장으로 취임한다. 박 당선자는 이날 시청에서 선서식을 갖고 제4대 브룩헤이븐 시장으로서 4년 임기를 시작한다.
40대에 늦게 단 정치인 이름표에도 불구하고 ‘최초’라는 이정표를 세웠지만 시작부터 거창한 뜻은 없었다. “나이 들어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살고 싶어” 조지아에 왔는데 그 보통 사람의 바람이 좌절되자 “이게 다 정치 탓”이라는 생각이 든 게 시작이었다.
늘어나는 이주민 인구에 주택 재개발 사업이 커지며 동네가 시끄러워지자 하소연할 곳 없던 집주인 이웃들이 모여 당시 시장과 대학 동기였던 그를 부추겨 정치인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2014년 보궐선거를 통해 브룩헤이븐 2지역구 시의원으로 당선돼 시정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작년까지 9년간 세번 시의원을 연임했다.
오랜 시의원 경험을 바탕으로 시장직에 도전, 작년 12월 마침내 조지아를 포함한 동남부지역에서 첫 한인시장 탄생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대의명분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별다른 고민도 없이, 전형적인 ‘중산층’적 욕구로 시작한 정치라는 게 멋쩍지만, ‘조용한 도시’에서 살고 싶다는 그의 바램은 이제 공공의 질서와 주민 안녕의 영역으로 확장됐다.
지역사회를 통합하고, 약자를 보호하며, 소수계 커뮤니티를 발전시키는 것이 모두에게 유익하고 안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실용주의적 정치를 내세운다. 진보와 보수의 꼬리표를 떠나, 이민자가 늘어나는 사회에서 우리가 가진 현실적인 문제를 도외시할 순 없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타인종 이웃을 떠나 살 수 있는 교외 지역은 더 이상 없다. 가장 이민자적인 것이 가장 미국적인 것이기에 부유하고 조용한 교외 도시의 전통적 이미지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박 당선자에 앞서 제이 맥스 데이브스 브룩헤이븐 초대 시장과 연임한 존 언스트 현 시장은 모두 백인 남성이다. 첫 소수계 시장으로서 그가 갖는 강점은 다양성과 포용성에 있다.
브룩헤이븐 시가 속한 디캡 카운티는 2021년 기준 전체 인구 중 8.8%가 비시민권자며, 외국 출생자는 16.2%에 달한다. 이민자 소유 비즈니스만 7000개가 넘는다. 시에 라틴아메리카협회(LAA) 본부가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그에게 있어 다양성과 포용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소수계 시장으로서 이제 그는 “바빠서, 몰라서 조용한 사람들을 정치가 다시 ‘시끄럽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존 박 브룩헤이븐 시장 당선자가 시청에서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했다.
“소외·차별 경험이 다양성 추구하는 정치적 자산”
주민들과 소통하며 다양성 정책 적극 펼칠 터
노인 아파트·요양시설 주변 공원·산책로 확충
-시장 임기 첫 해에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할 정책은
“다양성 정책이다. 정치적 레거시(legacy)가 없는 작은 신생도시로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방법은 커뮤니티의 모든 주민들과 연결되는 것 밖에 없다. 브룩헤이븐 시의회에는 백인 남성이 한 명도 없다. 흑인과 히스패닉, 여성들로 구성돼 있다. 2022년 9월부터 시의회 내 ‘사회 정의 및 인종 평등을 위한 위원회'(SJREC)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시의원은 물론 청소년과 무슬림 시민 등을 포함해 37명의 위원을 꾸렸다. 언어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도 정책 연구 못지 않게 중요하다. 시청 직원의 10-15%가 스페인어 사용자인데 다양한 언어권의 직원 채용을 늘릴 계획이다. 라틴아메리카협회(LAA)와의 협업도 자주 진행한다.”
-시장으로서 기초 정치에 대한 관심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첨단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역시 인터넷 공간이다. 소수계 사회일수록, 작은 커뮤니티일수록 온라인에서 변화가 시작된다. 시 의회 역시 소셜미디어(SNS)나 어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양한 언어를 제공하는 한편, 내용은 최대한 짧고 단순하게 만든다. 사람들에게 친숙한 매체를 통해 우리는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며, 당신의 필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인 주민들과 연관되는 내년 사업이 있다면
“존슨페리 등 브룩헤이븐 내 여러 노인아파트에 약 200명 가량의 한인 노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등록 유권자의 2% 가량이기에, 시에서도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무시하지 못한다. 고령층의 가장 큰 문제는 보행이 불편해 이동권에 제약을 받는 것이다. 노인 요양시설을 중심으로 공원, 산책로 등의 시설을 확충하고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드론 등 신기술을 활용한 치안 강화방안도 계획 중이다.”
-한인이라는 인종적, 문화적 배경이 정치 활동에 미친 영향은
“한국에서 태어나 6살이 되던 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한 부친이 정권의 위협을 받아 가족과 함께 앨라배마주로 망명했다. 오랜 기간 학생 비자를 받아 체류했기 때문에, 미국 시민권을 받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타국 이민이라는 문화적 충격에 더해 남부의 인종차별적 환경을 극복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남부식 전통 음식을 즐겨먹는 것과 같이 수차례의 문화적 충격과 소외 경험이 나에게 남긴 흔적들이 지금은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는 문화적 고리를 만들어 주었고, 그것이 다양성을 추구하는 정치적 자산이 됐다.”
-한인 신인 정치인들의 도전이 있을텐데,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한인 1.5 또는 2세대 중 전문직 종사자가 많아지고 소득 수준이 올라가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치적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 노출을 두려워해선 안된다. 커뮤니티 내에서 ‘지금은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새로운 시대의 기회를 만끽할 때’라는 희망을 서로 북돋는 것이 중요하다.”
취재, 사진 / 장채원 기자 jang.chaewon@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