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에서 무덤까지.” 이 말,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사회가 책임진다는 의미다. 영국의 처칠 수상이 복지국가의 이상을 강조하며 만든 말이라는데, 지금도 종종 쓰인다. 물론 미국은 유럽 복지국가처럼 무한정 퍼주는 나라는 아니다. 그렇다고 복지가 없는 건 또 아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틀로 자리 잡은 게 바로 소셜 시큐리티다.
한 10년 전쯤에 있었던 일이다. 이민 온 지 며칠 안 된 ‘이민인’ 씨는 공항에서 마중 나온 친척의 손에 이끌려 여기저기 다니며 미국 생활을 하나하나 배워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친척이 말하길, 제일 먼저 해야 할 게 소셜시큐리티 신청이란다. ‘이민인’ 씨는 운전면허나 은행 계좌 개설 같은 게 더 급하지 않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란다. “운전면허도 소셜카드 없으면 못 만들고, 은행 계좌도 마찬가지야.” 친척이 그렇게 말했단다. 생전 처음 들어본 단어에 어리둥절한 ‘이민인’ 씨는 ‘소셜시큐리티’를 인터넷에 쳐보았다. ‘사회보장제도’라고 나온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걸 제일 먼저 신청하라는 건지, 쉽게 납득은 안 됐겠지만.
그런데 알고 보면 소셜 시큐리티는 그냥 노후 연금 제도 그 이상이다. 신분증만큼이나 중요한 ‘번호’ 하나가 주어지니까 말이다. 운전면허를 만들든, 융자를 받든, 취직을 하든, 미국 사회에서 뭔가를 하려면 이 번호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한다. 소셜 시큐리티가 사실상 미국 시민 생활의 ‘열쇠’라는 말도 과언은 아니다.
이 제도의 시작은 1930년대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대공황의 충격 속에서 생겨난 제도였고, 공식 명칭은 지금도 ‘Old Age, Survivors, and Disability Insurance’다. 즉, 노령자, 유가족, 장애인을 위한 보험이라는 뜻이다. 처음부터 보험의 개념으로 만들어졌고 지금도 보험료처럼 세금을 내고, 나중에 필요할 때 혜택을 받는 구조다.
구체적으로는 이렇다. 일하면서 월급을 받을 때 ‘FICA Tax’라는 이름으로 소셜 시큐리티 세금이 떼어진다. 그게 쌓여서 나중에 은퇴하면 연금으로 돌아오는 구조다. 은퇴하지 않아도, 가장이 사망해서 유가족이 생겼을 때, 혹은 불의의 사고로 장애가 생겼을 때도 이 제도 덕을 본다. 결국은 정상적으로 일하며 세금을 낸 사람과, 그 가족들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라고 보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소셜 시큐리티는 ‘내가 낸 만큼 돌려받는 제도’가 아니라는 거다. 누가 더 오래 살
고, 누가 더 오래 일을 했고, 언제 연금을 신청하느냐에 따라 금액이 천차만별이다. 그렇다고 연금이 무제한 오르지는 않는다. 일찍 신청하면 금액이 줄고, 늦게 신청하면 늘어나는 구조니까, 타이밍이 꽤 중요하다.
또 하나 기억할 것은, 미국에 살면서 일을 하지 않았거나 근로 세금을 내지 않은 사람은 이 제도의 혜택을 받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물론 배우자나 부모를 통해 간접적으로 받을 수 있는 길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예외적인 경우다.
결국, 소셜 시큐리티는 은퇴 시점이 돼서야 “이제 알아볼까?” 하면 이미 늦었다는 얘기다. 왜냐면 그 시점엔 더 이상 세금을 낼 수 없고, 제도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젊을 때부터 이 제도를 잘 이해하고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 ‘이민인’ 씨처럼 미국 생활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소셜 시큐리티가 단지 ‘연금’의 개념이 아니라, 미국 사회를 여는 ‘첫 관문’이라는 걸 꼭 알아둬야 한다.
물론 늦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일이 늘 그렇듯, 늦었다고 생각한 그 순간이 사실은 가장 빠를 때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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