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인생배우기 (39)
달과 육면체, 위대한 유화, 파일 대왕, 차타레 부인의 오버, 나바론의 장갑, 와인과 함께 사라지다, 두 접시 이야기, 전망 좋은 차도…… 많이 들어본 제목들인데, 뭔가 좀 이상하다.
이것은, 나이 50이 되어 어린이 책을 쓰기 시작했으며 결코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소망을 갖고 산다는 그림책 작가, 콜린 톰슨의 책 속에 나오는 책들의 제목이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장소는 방이 천 개가 있는 도서관이다. 도서관 문이 닫히고 경비 아저씨가 잠에 곯아떨어지면 책장이 살아난다. 주인공 피터는 가족과 함께 요리책 속에 산다.
책장에는 지금까지 출판된 모든 책이 꽂혀 있지만, 단 한 권만 200년 전에 사라졌다. 그 책의 제목은 <영원히 사는 법>이고, 이 책에 대해 아는 유일한 사람이 피터이다. 피터는 우연히 이 책의 기록 카드를 발견하고 2년 동안 매일 밤마다 책을 찾아 헤매었다. 그러다 피터는 오랫동안 잊힌 다락방 찬장 아래 컴컴한 곳에 노인 네 명이 한 다리로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찾아간다. 노인들은 아무도 오지 않는 곳을 처음으로 찾아준 피터를 반기며 <영원히 사는 법> 책을 준다.
“이 책은 효과가 없나 보지요?” 책을 가지고도 폭삭 늙은 노인들을 바라보며 피터가 묻자, 노인들은 피터를 영원한 아이에게로 안내한다. 영원한 아이는 열 살쯤 들어 보이는 아이지만 활기 없이 지친 노인 같다. 아이는 피터에게 책을 읽지 말라고 한다. 책을 읽고 영원한 삶을 얻었지만, 사실 자신이 얻은 것은 끝없는 내일 뿐이라 한다. 피터가 어떤 선택을 했을지는 책에서 확인 바란다.
이 책은 읽어 주는 책이 아니라, 편하게 앉아 보아야 하는 책이다. 나는 침침한 눈으로 돋보기를 들고 이 책을 보고 또 보았다. 도서관 책꽂이에 있는 수많은 책들의 제목은 대부분 익살맞은 패러디다. 빽빽하게 꽂힌 책 사이에 그려진 풍경과 장식품들 하나하나에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이 담겨있다. 또한 호기심 많은 독자들을 위해 마지막 장에 원래 제목과 저자를 적어 놓는 친절도 베풀었다.
책을 여러 번 읽다 보니, 영원한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여럿 떠올랐다. 첫번째는 <은하철도 999>다. 어릴 때, 일요일 아침마다 열심히 챙겨 봤던 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철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긴 우주여행을 떠나 마침내 프로메슘이라는 행성에 도착한다. 영원한 생명은 인간을 기계로 만드는 것이었고, 더 이상 배움과 노동이 필요치 않는 기계인간들은 지루한 삶을 견디기 위해 흥청망청 놀거나 스스로 영원한 삶을 끝내려 애쓴다. 또 다른 이야기는 미국의 저명한 아동문학 작가, 나탈리 배비트의 장편동화 <트리갭의 샘물>이다. 우연히 숲 속의 샘물을 마시고 영원한 삶을 얻게 된 제시가족과 답답해서 집을 나온 열 살 소녀 위니가 만나 영원한 삶이 주는 고달픔과 즐거움을 함께 보여주며,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깊이 생각하게 하는 동화이다.
현대 과학 기술은 인간을 영원한 삶으로 점점 이끌고 있다. 기계인간의 모습이든, 마시면 영원히 살게 되는 약물의 개발이든, 많은 과학자들이 예언하듯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봄인가 했는데 어느덧 시간은 여름의 문을 열고, 마당에는 봉긋봉긋 올라온 개미집이 여러 개다. 미국 개미는 보통 개미가 아니라, 대부분 불개미라고 한다. 정확한 학명은 모르겠지만 이 불개미에 물리면 불에 덴 듯 따갑고 상처 부위가 붓고 가려워서 흉터를 남긴다. 개미집이 더 늘면 살충제를 뿌리고, 뜨거운 물을 붓고 개미들과 전쟁을 시작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개미와 인간의 공존 방식이다.
인간의 수명이 늘어날수록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늘어간다. 편안하고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늘어가는 것은 삶이 그러하듯 죽음도 신의 축복임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