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과 미국의 가장 큰 화제 가운데 하나는 ‘관세 폭탄’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폭탄을 언급할 때마다 한국은 물론 세계가 들썩인다. 대통령 탄핵으로 ‘리더십 부재’ 상태인 한국도 미국에 통상교섭단을 보내고, 자동차 업계 보조금을 지급할 정도로 마음이 급하다. 수출로 살아가는 대한민국에 있어 미국과 같은 큰 시장은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입에 올릴 때마다 세계 정상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격렬히 반발하거나 고개를 숙이거나. 그러나 멕시코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Claudia Sheinbaum) 대통령은 다른 길을 택했다. 그녀는 소리 없이 움직였다.
많은 한인들이 잘 모르지만, 멕시코의 셰인바움 대통령은 2024년 10월 취임한 ‘초보 대통령’이다. 멕시코 시티 시장을 역입하고, 멕시코 200년 헌정사 최초의 ‘여성 대통령’ ‘유태계 대통령’을 기록했다. 그를 지지하는 모레나 당은 자유주의 쪽으로, 셰인바움 대통령 역시 좌파 정책을 취하고 미국과 대립할 것으로 예상돼 왔다.
그러나 취임 반년 동안 셰인바움 대통령은 외교와 경제 면에서 주목할만한 성과를 거뒀다. 지난 2월, 미국이 멕시코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기 하루 전, 셰인바움은 조용히 국경 강화 조치를 발표했다. “불법 이민자 단속과 펜타닐 밀매 차단을 위해 1만 명의 국가경비대를 투입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트럼프의 요구를 선제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미국은 관세 부과를 유예했고, 거침없는 발언으로 유명한 트럼프는 좌파 성향의 셰인바움을 “놀라운 여성”이라 칭했다.
이것이 바로 셰인바움식 외교의 핵심이다.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상대의 요구를 냉정하게 분석해 실익을 따진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선제적으로 양보한다. 미국멕시코협(American Society of Mexico) 래리 루빈(Larry Rubin) 회장은 “셰인바움은 인내심을 갖고 냉정하게 대처하며 양국의 경제적 상호의존 관계를 정치적으로 강화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실용주의 외교는 멕시코 국내 개혁의 든든한 기반이 되고 있다. 88%라는 놀라운 지지율을 바탕으로 셰인바움은 ‘플란 멕시코’(Plan Mexico)라는 장기 경제발전계획을 추진 중이다. 내수시장 활성화와 민간 투자 인센티브 강화가 경제 정책의 핵심이다. 미국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며 국내 개혁에 집중하는 전략이다.
멕시코는 2023년부터 중국을 제치고 미국의 최대 교역국으로 올라섰다. 양국 교역 규모는 2024년 기준 8400억 달러로, 중국과의 교역액 5820억 달러를 크게 웃돈다. 스탠퍼드대 디아즈-카예로스 교수는 “트럼프도 중국과의 관계가 불확실한 가운데 미국 자본이 멕시코에 유입되고 있는 현실을 인식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셰인바움의 외교 전략은 2015년 페냐 니에토 전 대통령 시절부터 이어져 온 멕시코의 대미 외교 노선과 맥을 같이한다. 당시 트럼프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역대 최악의 협상”이라 비판했을 때, 니에토는 트럼프를 멕시코로 초청해 구슬리는 우회전략을 구사했다.
이러한 멕시코의 외교 모델은 트럼프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과 다른 국가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감정적 대응이나 무조건적 굴복이 아닌, 냉정한 실리 계산과 선제적 대응이 핵심이다. 상대의 요구 중 수용 가능한 부분은 과감히 받아들이되, 자국의 핵심 이익은 조용히 지켜내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역시 트럼프 정권 1기 당시 비슷한 성과를 거둔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초 예상을 깨고 트럼프 대통령과 ‘찰떡 궁합’을 자랑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노벨상을 가지시라. 우리는 평화면 충분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구슬렸다. 그 결과는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이었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이 세계 무역 질서를 뒤흔드는 가운데, 멕시코는 침묵의 외교술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있다. 때로는 소리 없는 행동이 천 마디 말보다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새로 출범할 대한민국 정부가 셰인바움 대통령의 ‘침묵의 외교’를 공부해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