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ught in Providence’라는 법정 리얼리티 쇼가 있다.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의 판사 프랭크 카푸리오(Frank Caprio)가 진행하는 법정 리얼리티 쇼인데,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판결을 내리기로 잘 알려졌다.
한 젊은 싱글맘이 여러 건의 불법 주차 위반으로 리얼리티 쇼 법정에 섰다. 그녀는 경제적으로 너무 힘든 상황이라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불법 주차를 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카푸리오 판사는 그녀의 상황을 이해한 후 벌금을 자신의 지갑에서 내 주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계속 힘내세요. 당신 아이들은 정말 좋은 엄마를 뒀네요.”
4월 18일 기고에서 도둑들과 엄마의 사랑 이야기를 했다. 도둑 중에 생후 첫 몇 년간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냉혈한 주인공 페리와 조세형 씨는 거듭날 기회가 왔어도 변하기 어려워서 도둑으로 되돌아갔지만, 같은 도둑이라도 어려서 엄마의 사랑을 제대로 받고 자란 임종덕 씨는 도둑질하다 잡혀 양아버지를 만나 새사람으로 거듭나 미국 역사에 큰 도움을 준 인물이 되었다.
엄마의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이 건강한 아이를 만들고 키우며, 그래서 이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해 나간다고 생각하면 여자들이 아름답고 감사하게 느껴지고, 여자들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신비하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했다.
‘냉혈’이라는 영화 속에 잔인한 도둑 페리가 출생하자마자 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제대로 된 가정에서 자라났다면, 그가 잔인한 도둑이 되었을까. 조세형 씨가 생후 처음 2년 동안 엄마의 사랑을 제대로 받으며 자랐고, 난리통에 아버지가 죽은 후 엄마의 재혼으로 인해 혼자 구걸하며 살지 않았다면, 그가 도둑이 되었을까.
그들을 도둑으로 만든 조건들이 과연 그들 탓일까. 설령 그들이 도둑이 될 유전 형질을 타고났다고 한들, 그것이 그들의 선택이고 책임일까. 만약 내가, 아니 우리 중 누군가가 그들이 태어나 자란 조건에 있었다면, 도둑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았을까.
타고난 유전 형질과 자라난 환경이 그 사람을 만든다. 페리라는 잔인한 도둑이나 조세형 씨도 그들에게 주어진 유전 형질과 생존한 환경의 결과물이다. 그들의 선택은 없고, 다 그들에게 주어진 조건들의 결과라면 반사회적인 인물로서 도둑질하고 형벌을 받으며 미움을 받을 삶을 준 신이나 운명은 불공평하지 않은가.
미국 대학에서 첫 안식년 휴가를 받았을 때, 나는 한국에 나가 나의 아버지가 어린 시절 살아온 이야기를 알아보려 그분이 출생하고 자란 시골 고향에 갔었다. 그분과 같이 자란 분을 만나고 친척분을 만나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1900년에 출생하자마자 그의 생모가 사망했다. 그는 중농의 첫아들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이웃 아기 엄마의 동냥젖을 얻어 먹이고, 처녀 장가를 들었다. 이복 두 남동생들이 출생하고, 그는 형제들 사이에서도 외톨이가 되어 싸우면서 자랐다. 그 아이가 커서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그는 ‘냉혈’ 영화의 주인공 페리나 조세형 씨 같은 도둑이 되진 않았다. 그분은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고, 농가의 막노동, 광산 노동, 신기료 장수, 소백산 속 화전민으로 가난하게 살았고, 술중독과 가정 폭력으로 그의 부인은 가출했다가 6·25 난리 후 서울에서 재결합하여 그의 말년은 비교적 평안히 지내 시다 돌아가셨다.
내가 1900년 충청도 산골에서 아버지의 자리에 태어났더라면, 내가 아버지가 되었을 것임은 분명하다. 출생하자마자 죽은 엄마, 나를 안고 젖을 먹이며 사랑으로 눈을 맞추고, 잼잼 짝짝꿍을 하며 인지 기능을 배우고, 첫 걸음마를 배울 때 손을 잡아 주고, 자장가를 흥얼거리며 생존을 위해 마음 써주는 엄마가 없이 아버지와 같은 조건이었다면 나도 사람에 대한 기본 신뢰와 공감 능력이 없고, 극단적 자기 중심적이며, 감정 조절이 안 되어, 조금만 불편해도 감정이 폭발하고 싸우고 부수고 때리는 반사회적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내 아버지나 페리나 조세형 같은 분들의 입장에 서보면 세상은 참 불공평하고 억울하다. 출생부터 채워지지 않은 생존 조건들, 이웃의 미움과 천대, 삶의 무거운 짐에 비틀거리다 쓰러지고, 손가락질과 비난의 대상이 되고, 외롭고 고달프게 살아가야 하는 삶. 만약 죽어서 가는 천국이 있다면, 그런 분들을 위해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내 이웃을 사랑하려면,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고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이만큼 사는 것도 은혜임을 다시 한 번 감사하며, 그 은혜 속에는 아버지의 고난의 일생에서 얻은 교훈의 덕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