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한덕수 무소속 대선후보의 단일화를 둘러싼 국민의힘 내홍이 점입가경이다. 김 후보는 당 지도부에 구체적 일정을 알리지 않은 채 6일 1박2일 일정으로 영남을 찾았고,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가 김 후보를 설득하기 위해 대구행 KTX에 급히 몸을 실었지만, 이를 단일화 압박으로 간주한 김 후보는 일정을 전격 중단하고 상경하는 초강수를 뒀다.
서울로 온 김 후보는 이날 밤 10시 40분쯤 입장문을 내고 “7일 오후 6시 한 후보를 단독으로 만나기로 약속했고, 이는 후보가 제안했다”며 “단일화와 관련해 더는 불필요한 논쟁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당 지도부를 겨냥해서는 대선 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발동한다고 밝히며 “당 지도부는 더는 단일화에 개입하지 말고, 관련 업무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 이 시각부터 단일화는 전적으로 대통령 후보가 주도한다”고 했다. 7일 당 지도부가 실시하기로 한 단일화 찬반 당원 조사를 두고는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밤 김 후보의 자택을 찾은 권 원내대표는 이에 대해 “단일화가 되면 지도부가 개입할 필요가 없다. 제발 단일화 합의를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이날 국민의힘은 종일 롤러코스터를 탔다. 일단 김 후보가 시·도당 관계자에게도 행선지를 알리지 않은 채 영남으로 내려갔다. 그러다 김 후보는 오후 4시10분쯤 경북 경주에서 취재진에게 “저는 후보 일정을 지금 시점부터 중단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어 “당은 (전날) 기습적으로 전국위원회와 전당대회를 소집했고, 이는 정당한 후보인 저를 강제로 끌어내리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김 후보 측 관계자는 “일정 중단은 전적으로 김 후보의 결단이었고, 우리도 몰랐다”며 “당원을 대상으로 7일 단일화 찬반 조사를 한다는 소식에 불쾌감을 느낀 김 후보가 당 지도부가 상의도 없이 찾아온다고 하니 아예 일정을 중단키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김 후보 측은 당 지도부가 한 후보와 한 몸으로 움직이면서 극적인 대구 회동을 연출한 게 아니냐고 의심했다.
반면에 이른바 ‘쌍권’(권영세·권성동)은 이날 오후 3시50분쯤대구행 KTX를 탔다가 열차 안에서 김 후보의 일정 중단 소식을 접했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냐”는 탄식이 흘렀다. 당 관계자는 “두 사람은 울며 겨자 먹기로 대전역에서 중도 하차했다”며 “어떤 식으로든 타협점을 찾으려 했는데 김 후보가 너무 독단적으로 반응한다”고 토로했다.
한 후보 측도 바삐 움직였다. 당 지도부의 대구행 소식에 캠프 참모진은 한 후보에게 “(후보님도) 직접 내려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요청했지만, 한 후보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한 후보는 “단일화 여부는 김 후보와 국민의힘 지도부가 먼저 풀어야 할 문제다. 단일화 방식도 그쪽에 전적으로 일임한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대신 흠결 있는 단일화를 해선 안 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한 후보 측 관계자는 “흠결 있는 단일화란 김 후보를 고의로 눌러 앉히는 단일화로 (참모진은)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이날 국민의힘 지도부와 김 후보 측은 계속 삐걱댔다. 김 후보는 오전 입장문을 내고 “당은 후보를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당 운영을 강행하며 공식 대선후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8~9일 전국위, 10~11일 전당대회를 소집한 이유를 분명하게 밝혀 달라”고 강조했다. 당 지도부는 전날 심야에 전국위, 전당대회 일정을 통보했다. 김 후보 측 김재원 비서실장은 라디오에서 “김 후보는 단일화가 여의치 않으면 (전대를 통해) 김 후보를 끌어내리려는 것이 아니냐고 강한 의심을 하고 있다”고 했다.
당 지도부도 맞불을 놨다. 권 위원장은 이날 오후 2시 당 의원총회에서 “김 후보의 단일화 약속을 믿고 선택했는데, 이제 와서 신의를 무너뜨리면 국민과 당원을 배신하는 것”이라며 “목표 시한(11일) 내에 단일화에 실패하면 위원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김 후보 측근 그룹을 겨냥해 “당권을 장악하고 내년 지방선거 공천권을 노리는 사람이 단일화에 부정적이라는 이야기까지 돈다”고 말했다.
의총에서는 중진 의원을 중심으로 “김 후보가 올 때까지 밤샘 의총을 열자”는 주장도 나왔다. 윤희숙 여의도연구원장은 페이스북에 “단일화할 마음이 없다면 김 후보는 후보 자격을 내려놓고 길을 비키십시오”라고 썼다.
이후 오후 8시 재개된 의총에서는 “권 위원장과 권 원내대표가 오늘 밤 김 후보를 다시 찾아 설득하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고, 다른 의원들은 “그렇게 하면 지나치게 압박하는 모양새”라며 반대 의견을 냈다고 한다. 결국 이날 저녁 권 원내대표와 김기현·박덕흠 의원 등이 김 후보의 봉천동 자택을 찾아갔지만, 김 후보는 별도의 장소에서 본인이 단일화 협상을 주도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양측의 충돌에는 단일화 시점에 대한 뚜렷한 시각차가 자리 잡고 있다. 당내에선 김 후보의 강공에 후보 등록 마감일인 11일을 넘겨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한 후보보다 인력·재정 면에서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렸다고 본다. 실제로 김 후보 측 인사는 “단일화가 빠르면 좋지만, 재외국민 선거 전날인 19일이나 투표용지 인쇄 전인 24일까지 이뤄져도 된다”며 “단일화는 막판에 성사돼야 효과가 큰데, 지도부가 11일을 마지노선으로 정한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경주=장서윤 기자 9ke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