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12
신의 이름으로 선택 받은 사람들은 신의 뜻대로 움직일까, 아니면 욕망의 유혹에 굴복 할까, 우리는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영화 [콘클라베]는 신의 뜻이 가장 밝게 빛나야 할 장소에서 더욱 선명히 드러나는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밀도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감독은 종교와 권력, 믿음과 현실이 부딪히는 이야기를 스릴러를 가미한 미스테리로 긴장감 있게 끌고가다 마지막 반전 앞에 우리를 던져 놓는다. 그리고 우리는 혼란에 빠진다. 영화는 로버트 해리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2024년 아카데미 각색상을 받았다.
주인공 로렌스 추기경(배우:랄프 파인즈)은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의 단장이 된다. 전세계 추기경들이 모여들고 그들을 맞이 하기 위한 수녀들의 발걸음도 빨라진다. 라틴어 미사의 부활을 내세우며 강력한 교회를 주장하는 보수파에 맞서 성소수자와 여성에게 관대한 시각을 가진 진보파, 중간에서 어부지리를 얻으려는 중도파들까지 현실의 선거판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욕망들이 온 바티칸을 집어 삼킨다. 추기경들은 음모와 비방, 야합의 소리에 정신이 팔려 정작 들어야 할 신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러던 중, 추기경 명단에도 없는 새로운 추기경이 등장한다. 고인이 된 교황이 임명한 베니테즈라는 카불의 비밀 추기경이었다. 그의 등장은 미묘한 불안과 긴장을 일으키며 선거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 로렌스는 교회에 헌신할 수 있는 교황을 보내달라고 기도한다. 하지만 교황의 자리를 사양하는 자신에 대한 불안과 그 자리를 탐내는 추기경들의 자질에 대한 의심으로 기도에 대한 답은 들리지 않는다. 막중한 중압감과 초조함, 끊임없는 의구심은 신의 소리가 아닌 세상의 소리에 의지하게 한다.
바티칸의 정보력으로 수면아래 가라앉았던 추기경들의 성추문과 비리들이 드러나고 콘클라베는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하지만 로렌스는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비밀 추기경인 베니테즈에게 신의 그림자 같은 기운을 느낀다. 마침내 베니테즈는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된다. 비록, 외부의 영향을 받으면 안된다는 콘클라베의 규칙은 위반했지만, 그로 인해 부도덕한 사람들을 제거하고 때묻지 않은 맑은 영혼의 인물을 선택할 수 있었다고 로렌스는 스스로를 위안한다. 그리고 그것이 신의 뜻이라는 확신이 드는 순간 외부의 소식통은 충격적인 사실을 로렌스에게 전한다.
베니테즈의 신체적 비밀, 그는 남성과 여성을 한 몸에 지닌 인터섹스였다. 이것이 정말 신의 뜻일까? 유구한 교회의 전통은 한 인간의 진실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의 비밀을 알았던 고인이 된 교황은 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일까?… 로렌스는 고뇌한다. 결국 로렌스는 베니테즈에게 사임을 권한다. 하지만 베니테즈는 확고했다. 그는 많은 고뇌와 의심 끝에 자신의 몸 그대로가 바로 신의 창조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동시에 교황의 임무 역시 신의 뜻이기에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영화는 추기경들을 위해 소리없이 움직였던 수녀들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 걸 보고 있는 로렌스의 얼굴을 보여주며 끝이 난다.
영화는 끝났지만 뒤통수를 얻어 맞은 것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시간이 갈수록 출구 없는 수렁에 빠진 듯 더 혼란스러워졌다. 사실 인터섹스라는 반전은 그저 하나의 정보일 뿐 진짜 반전은 영화가 묻는 물음이었다. ‘당신은 그를 교황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자신의 신념이 무너지는 변화를 감당할 수 있는가 ?…’ 영화속 장면들이 떠올랐다. 성당의 벽화 속에서 고뇌하던 인물들의 얼굴, 느린 걸음으로 묵묵히 기어가던 거북이, 거북이를 놓아주던 손, 수녀들을 바라보던 알 수 없는 표정의 얼굴, 그리고 로렌스의 침묵, 강력한 정보력으로 유력한 후보들을 제거했던 그는 왜 베니테즈의 비밀에서 침묵했을까…
우리는 흔히 믿음의 시작은 확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콘클라베가 보여준 믿음은 오히려 흔들림 앞에서 시작된다. 로렌스는 콘클라베 시작 설교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 믿음을 고백한다. 끊임없는 의심이야말로 확신이 주는 잘못된 믿음을 올바르게 이끌어 가는 힘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신의 뜻은 언제나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곳에 있다. 그 뜻을 다 알 수 없어도, 때론 진실이 무겁더라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용기, 그것이 진정한 믿음이 아닐까 …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