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25년 넘은 재봉틀이 있다. 자급자족이 가능할까?를 고민하던 때라 재봉틀이라는 도구로 의식주에서 ‘의’를 해결하는데 어떤 도움을 기대했다. 사실 이런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동기는 작고 가까운 데서 온다. 그 당시 몇몇 친구들이 생활한복을 만든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도 친구들의 그 물결에 끼고 싶어서 얼른 재봉틀을 마련했다. 그리고 몇 벌의 생활한복을 만들어 가까운 식구들과 나누어 입었다.
그리고 퀼트에 재봉틀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퀼트를 처음 배울 때, 조각천을 손바느질로 잇는 즐거움에 푹 빠졌다. 하루 종일 손바느질만 하면서 살면 좋을 것 같았다. 하긴 재봉틀을 처음 배울 때도 그랬다. 퀼트 초급 수준을 조금 벗어나자 재봉질과 손바느질을 섞어서 사용하니까 훨씬 효율적이었다. 퀼트로 생활 소품이나 이불을 만들어 소소한 즐거움을 누렸다. 이제 나의 나이든 재봉틀은 바지 길이를 줄이는 단순한 재봉질에 사용된다.
한번은 이웃들과 중고 물건을 나누어 쓰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고품 중에는 옷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다. 패션에 남다른 감각으로 옷을 다양하게 소유하고 있는 어느 이웃은 옷을 재사용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중고 옷을 원하는 사람한테 맞춤 수선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내었다. 옷수선을 재봉틀을 만져본 내가 해보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게는 옷 수선할 기술이 없었다.
그 즈음 읽은 <핀란드 사람들은 왜 중고가게에 갈까?>는 참 인상적이었다. 이 책의 지은이 박현선은 가구디자이너다. 지은이는 환경과 소비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가구디자인을 배우러 핀란드에 갔다가 중고 문화를 만난다. 핀란드는 유엔이 조사한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까지 연속 7년 동안 행복지수가 1위인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핀란드에 중고 문화가 자리잡게 된 배경과 여러 중고 가게의 형태를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핀란드는 러시아와 스웨덴 사이에서 전략적 요충지로 취급받던 나라였다. 핀란드는 두 강대국의 지배를 받다가 1917년 독립한다. 스웨덴이나 덴마크 같은 북유럽 국가는 왕족이 다스렸는데 핀란드는 왕족이 없었다고 한다. 핀란드는 보통 사람들이 만든 나라다. 생활용품도 럭셔리 브랜드가 아니라 일반적인 생활용품이 자리잡고 있다. 국경 분쟁과 내전, 그리고 1990년대 초 경제 대공황을 겪기도 한다. 그들의 중고 문화는 “대다수인 보통 사람들이 더 잘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더 나은 결과를 내기 위해 변화를 지체하지 않은” 결과물 중 하나다.
더 나아가 “환경을 생각하는 건강하고 경제적인 소비”라는 생각을 근간으로 중고 문화가 성장한다. 핀란드에는 사회적 기업으로서 역할을 하는 재사용 센터, 국민 브랜드와 협업하는 중고 가게, 시민 축제이면서 문화 공간이 되는 벼룩시장, 감성을 살린 리페어 카페 등이 있다. 핀란드에서는 낡은 물건을 고쳐 쓰거나 나누는 것이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지혜롭고 윤리적인 선택이라고 여기는 분위기다.
한편, 지은이는 중고 가게와 벼룩시장이 새 물건을 사기 위해 물건들을 빠르게 털어버리는 배출구로 이용되는 문제를 지적한다. 그러면서 물건을 오래 사용하는 확실한 방법으로 수리와 수선을 강조한다. 트레쉬 랩이라는 행사에서는 고장 나거나 부서진 물건을 수리하고 관련 정보를 나눈다. 전문가가 직접 수리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조언하기도 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물건을 아껴 쓰고 고쳐 쓰는 운동이다.
이쯤 되니, 옷 수선에 필요한 바느질이 단순한 취미를 넘어 평생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자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살도록 도와줄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한번 익힌 바느질 기술은 사용할수록 손끝을 더 여물게 할 터이고, 나이가 들어서도 사부작사부작 즐길 수 있는 일이다.
내 오래된 재봉틀은 한국에서 샀다. 전압이 다른 미국에서는 변압기를 이용하여 그걸 여태 썼다. 많은 일을 한 옛 재봉틀이 아직 살아 있지만 큰 맘 먹고 새로운 재봉틀을 집으로 들였다. 이 도구를 가지고 앞으로 25년 동안 재미있게 놀 생각을 하니 흥미진진하다. 일상에 필요한 새로운 바느질 기술을 부지런히 배우고 익힐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