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이민자 영웅상 수상한
웬디 그램 여사의 이민 가족사
“100여년전 할아버지는 한국에서 하와이 이민선을 타고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도착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은퇴하실 때, 그는 할아버지가 맨손으로 자른 사탕수수를 내다 팔던 그 공장의 부사장을 맡고 계셨습니다. 하와이 역사상 최초의 설탕회사 임원이었어요. 이것이 아메리칸 드림입니다.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는 자유입니다.
그리고 저는 레이건 행정부에서 미국 산업 보호를 위해 설탕을 비롯한 모든 수입품의 규제를 검토했습니다. 할아버지가 미국에 온 이유였던 그 설탕이죠.”
웬디 그램 전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위원장은 하와이 이민 3세다. 할머니는 하와이로 결혼 이주한 사진 신부다. 사진신부는 1900년대 초기 하와이 한인 농장 노동자들과 사진을 주고받아 선을 보고 하와이로 건너온 한인 여성들을 일컫는다. 그는 “할머니는 은수저 다섯 벌만 들고 하와이행 배에 올랐다”고 전했다.
그는 10일 이민자영웅상 시상식 수상소감에서 “모든 사람은 어떻게든 이민자의 후손”이라며 “이민자 혈통을 기억하고 기리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웰슬리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노스웨스턴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학계에서 먼저 명성을 쌓았다. 텍사스 A&M 대학에서 8년간 교편을 잡았다. 이곳은 그가 남편 필 그램 전 텍사스 상원의원을 만난 곳이기도 하다. 그는 “학교 면접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다”며 “하와이에서 평생 산 터라 남부 특유의 억양이 거슬렸다”고 그램 전 의원과의 첫만남을 회고했다. 이들 부부는 텍사스 샌안토니오 강변에서 결혼을 약속했다고.
1986년 워싱턴포스트(WP)는 그를 “연방규제와 통계의 짜리나(czarina·황후)”라고 지칭했다. 정보규제국(OIRA), 연방거래위원회(FTC), 상품선물거래위원회 등을 거친 그는 행정명령은 물론 의회를 통과한 법률까지 무력화할 수 있는 위치였다. 그램 전 위원장은 레이건 행정부의 기조에 발맞춰 시장주의 정책을 옹호했다.
이날 시상식에서 그의 경제정책은 다시금 주목받기도 했다. 프랭크 블레이크 전 홈디포 최고경영자(CEO)이자 한미우호협회 이사장은 “레이건의 규제 완화 업적 중 상당수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었지만, 지금 다양한 규제의 홍수 속에 살면서 그의 미덕은 다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램 전 위원장은 “정부는 대의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희생할 수 있다”면서 “다만 교수로 일하고 공직생활을 하며 갖게 된 신조는 누구보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장채원 기자 jang.chaewon@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