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정치는 언제나 왕과 영웅들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역사의 이면에는 실제 주인공들이 숨어 있다. 오스트리아의 탁월한 전기작가 스테판 츠바이크는 역사의 장막 뒤에 숨어있던 프랑스 혁명의 막후 권력자 조제프 푸셰를 세상 밖으로 끌고 나와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나쁜 정치는 어떻게 세상을 망치는가> 책은 로베스피에르를 단두대로 보내고 나폴레옹을 무너뜨리며 오로지 권력만을 향해 나아갔던 흑막의 정치가 조제프 푸셰의 전기다. 츠바이크는 카멜레온처럼 끊임없이 변신하는 푸셰의 생애를 추적하여 그의 심리적 내면세계와 각 인물간의 갈등구조를 생동감 있는 문체로 그려냈다.
“푸셰는 1790년에는 수도원의 교사였고, 불과 2년 후인 1792년에는 교회의 겁탈자가 되었고, 1793년에는 공산주의자가 되었고, 그로부터 5년 후에는 백만장자가, 그리고 10년 후에는 오트란토 공작, 그리고 마침내 임시내각의 수반으로 권력의 1인자가 되었다.” 푸셰의 파란만장한 삶이다. 푸셰는 1759년 프랑스 낭트에서 선원의 아들로 태어나 1820년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서 숨을 거두었다. 60여 년에 걸친 그의 생애는 프랑스혁명과 그에 뒤이은 루이 16세의 처형, 자코뱅의 공포정치, 나폴레옹 의 등장과 유럽전쟁, 그리고 나폴레옹의 백일천하와 왕정복고라는 격동의 시기와 맞물려 있다. 그런 시대에 푸셰는 세기 전환의 한복판에서 모든 당파를 이끌고 그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단 한 명의 남자였다. 그가 충성했던 단 하나의 대상은 권력이었다. 그는 권력 외에는 아무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근대의 가장 완벽한 마키아벨리스트였다.
푸셰는 죽는 순간까지 권력을 추구한 처세의 달인이자 기회주의자였다. 이념과 상관없이 언제나 다수당을 선택했고, 혼란의 시기에는 승자가 확연히 드러날 때까지 숨죽이며 기다렸다. 그는 인류 역사에서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든 변절과 배신의 귀재였다. 혁명가들이 대세를 장악할 때는 공산주의가 되었다가, 반동 쿠데타가 일어나면 손바닥 뒤집듯 혁명을 좌절시켰다. 그는 자신을 출세시켜준 바라스를 권좌에서 축출했다. 또 리옹 학살의 책임을 동료에게 떠넘겼고, 충성을 맹세했던 나폴레옹의 배후를 위협하며 그의 권력을 붕괴시켰다. 심지어 임시내각의 수반이 된 뒤에는 루이18세에게 권력을 팔아넘기기까지 했다. 그에게는 어떤 숭고한 가치나 이념도 없이 오로지 맹목적인 생존 의지와 권력 의지밖에 없었다. 루이18세는 “푸셰처럼 교활하고 약삭빠른 놈은 이 세상에 다시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푸셰는 정보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테르미도르 쿠데타 후 총재정부에서 처음 경무대신이 되었고, 이후 나폴레옹과 루이18세 치하에서도 그 직위를 맡았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을 발탁한 정부가 아니라 오직 자신을 위해서 정보를 이용했다. 프랑스 전역에 거미줄처럼 깔아 놓은 스파이망을 통해 모든 것을 엿듣고 감시했으며, 정치요인들의 뒤를 캐내 약점을 틀어쥐었다. 그의 촉수가 뻗치지 않는 곳은 없었으며, 정적인 나폴레옹의 아내 조세핀마저도 그에게 정보를 팔아넘겼다. 모두가 푸셰에게 고개를 숙였고, 나폴레옹도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푸셰를 가장 두려워했다. 이는 푸셰가 당대에 가장 막강했던 권력자인 나폴레옹과의 목숨을 건 권력투쟁에서 끝내 승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정치가 푸셰의 삶은 우리에게 정치의 본질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한다. 권력만이 충성의 대상이었던 푸셰의 정치에 국민은 없다. 오늘의 정치가라고 해서 다를 게 아무 것도 없다. 그들은 지능은 더욱 지능화 되고 고도화되었을 뿐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정치인은 없다.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는 ‘나의 출세(이익)를 위해….’로 해석하는 것이 정확하다. 독재자들은 이 원칙을 극단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사람일 뿐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무대를 장식하는 정치가들의 삶에서 우리는 또다른 푸셰의 얼굴을 본다. 대한민국의 정치판 돌아가는 모습을 보라.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정치가는 없다. 오직 권력과 이익만 있을 뿐이다. 이것이 그들의 본심이다. 순진한 국민은 속고 있을 뿐이다.
“어떤 도박판이든 아무래도 좋다. 왕국의 판이든, 제국의 판이든, 공화국의 판이든 상관할 것 없다. 다만 큰 판에 발을 담그고 한몫 챙기면 되는 것이지, 어디에 발을 담그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익이건 좌익이건, 황제든 국왕이든 대신이 되면 되는 것이다. 권력에 달라붙어 핥고 뜯어먹기만 하면 된다. 어떤 찌꺼기 권력이라도 그것을 물리치는 도덕적, 윤리적 힘을 결코 갖지 못할 것이며, 자부심이나 긍지 같은 것을 갖는 일도 결코 없을 것이다. 언제나 주어지는 일은 그것이 어떤 일이든지 받아들여질 것이다. 누가 무엇을 주는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 속에서 어떻게 승리하고, 나에게 이익이 되고 내 몫을 챙길 수 있는가가 문제인 것이다. 지금이라도 빨리 민중의 환심을 사도록 하자! 우리들이 진정으로 국민을 사랑하다는 것을, 국민의 바람과 권리를 존중한다는 것을 어떻게든 ‘어리석은’ 국민들에게 보여주자!”
결국 좋은 정치와 나쁜 정치의 판별 기준은 법치냐 인치냐, 사적이익 추구냐 공적이익 추구냐로 판가름 난다. 공자는 정치란 ‘올바름(正)’이라고 정의했다. 국민을 위한 정치는 올바른 정치이며 그렇지 못한 정치는 잘못된 정치이다. 다수가 행복 하다고 느끼지 않고 소수만이 만족하는 공동체, 책임을 회피하고 국민을 갈라치기하는 정치는 나쁜 정치이다. 나쁜 정치가는 세상을 병들게 하고, 우리의 삶과 미래를 파괴한다. 그런 정치가를 준엄하게 심판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모두 푸셰의 후예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