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이민자 단속에 한해 ‘인신보호청원’(habeas corpus, 헤비어스 코퍼스) 과정을 없애는 방안을 고려중이라고 발표했다. ‘인신보호청원’은 개인이 정부에 구금당했을 경우, 불법 구금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권리다. 미국 헌법 1조에 ‘반란이나 침략 등 공공 안전을 위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중단될 수 없는 권리’라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 역사상 ‘인신보호청원’ 권리가 정지된 경우는 남북전쟁 시기와 일본의 진주만 공격 직후 하와이 지역 등 4차례에 불과하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지금 불법이민 상황을 ‘2차대전’ 또는 ‘남북전쟁’ 상황으로 과장하고, 헌법에 규정된 기본권을 제한하려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복귀 100일, 그가 추진하는 정책들은 단순한 정치적 논쟁을 넘어 헌법 질서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헌법에 규정된 기본권도 거침없이 없애버리려 하며, 이를 판결로 막으려는 판사의 안전마저 위협하고 있다. 야당인 민주당은 이에 대해 제대로 이의도 제기하지 못한다.
“권력은 본래 견제받지 않으면 팽창한다. 이는 정치학의 오래된 명제다”라고 루칸 웨이 (Lucan Ahmad Way)토론토대 정치학 교수는 지적한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를 ‘경쟁적 권위주의’로 규정했다. 사법부를 공격하고, 법을 무시하며, 충성파를 요직에 앉히는 방식으로 권력을 강화하는 현상이 뚜렷하다는 분석이다.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그 제도를 존중하고 지키려는 정치 문화가 있어야 한다. 아지즈 후크(Aziz Z. Huq) 시카고대 로스쿨 교수의 지적처럼 “감시를 방해 행위로, 비판을 반역으로 간주하는 정권”은 이미 민주주의의 본질에서 멀어진 것이다. 특히 판사와 그 가족에 대한 위협은 사법 독립성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기둥을 흔드는 행위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법원의 명령을 무시하고 이민자들을 군용기에 태워 추방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보스버그 판사는 미국 정부에 대해 ‘법정모욕’ 혐의를 적용하려 하고 있다. 이 재판은 행정부에 대한 사법부의 견제력을 시험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법적 책임을 부인하고 있지만, 이는 단순한 법적 다툼이 아니라 ‘3권 분립이라는 헌법적 가치의 수호 여부를 가늠하는 문제다.
미국 시민들도 이러한 위기를 감지하고 있다. 공공종교연구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트럼프를 ’위험한 독재자‘로 인식하고 있으며, 다수가 그의 행정부가 법을 지키지 않고 권력을 남용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선호의 차이를 넘어선 헌법 질서에 대한 근본적 우려를 반영한다.
뉴욕시립대(CUNY) 경찰학과 글로리아 브라운-마샬(Gloria J. Browne-Marshall)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헌법적 권리의 침해는 이제 특정 집단을 넘어 이민자, 외국 유학생, 성소수자, 여성 등 다양한 계층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는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더 이상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이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웨이 교수는 “백신을 거부하다 전염병이 닥쳐야 그 필요성을 깨닫듯, 민주주의의 가치도 그것이 위협받을 때 비로소 그 소중함을 인식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지금 미국에서 퍼지고 있는 ’정치적 전염병‘은 민주주의의 면역 체계를 시험하고 있다. 미국의 현재 상황은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 제도인지,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시민의 각성과 연대를 필요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