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하자마자 ‘출생시민권 폐지’ (birthright citizenship)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불법 체류 중인 외국인, 또는 합법 체류자라도 부모 중 한 사람이 영주권자나 시민이 아닌 외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이민과 원정출산을 금지하겠다”며 행정명령을 밀어붙이고 있다.
현재 이 법은 현재 법원의 효력정지 명령으로 시행되지 않고 있으나, 연방대법원은 지난 5월 16일 이 법의 위헌여부에 대한 심리를 벌였다. 현재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파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만약 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 행정명령을 ‘합헌’이라고 결정하면 어떻게 될까?
“트럼프 행정명령이 합헌 판결을 받으면, 2025년 2월 19일 이후로 미국에서 태어난 모든 신생아들은 자동적으로 시민권을 가지지 못한다. 만약 대법원이 합헌 판결을 내리면, 이들 신생아들은 미국 시민이 아니며, 미국 정부는 신생아들의 시민권을 박탈할수 있다.” UC어바인 로스쿨 로버트 S 장(Robert S. Chang) 교수의 설명이다.
트럼프 행정명령이 합헌 판결을 받으면, 매년 22만 5천여 명의 신생아가 미국 시민권을 받지 못하며, 교육, 취업, 복지 혜택에서 배제되는 ‘무국적자’로 전락한다고 이민정책연구소(MPI)의 분석한다. 향후 50년간 체류신분없는 이민자는 최대 540만명까지 증가할수 있다. 불법이민을 막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거대한 ‘무국적자 집단’을 키우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출생시민권은 단순한 법적 지위를 넘어 미국 사회의 통합과 이민자 가정의 세대 간 이동성을 보장하는 핵심 장치다. 줄리아 길롯(Julia Gelatt MPI) 부국장은 “출생시민권은 이민자 자녀들이 부모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핵심 요소”라고 강조한다.
한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앞으로 학생비자, 취업비자, 투자비자 등으로 미국에 합법적으로 머물고 있는 한인들의 자녀들은, 미국에서 태어나도 미국 시민권을 받지 못한다. 아시안정의진흥협회(AAAJ)의 마틴 김 국장(Martin Kim)은 “아시안 커뮤니티가 성장할 수 있던 배경에는 출생시민권이 있었다”며 “행정명령이 시행되면 합법 체류자의 자녀들까지 무국적 상태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트럼프 행정명령은 또한 미국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라티노저스티스(LatinoJustice)의 세사르 루이즈(Cesar Ruiz) 변호사는 “소수계 이민자들의 시민권이 제한되면 투표권과 정치적 대표성이 축소되고, 센서스에 기반한 지역구 재조정에도 영향을 미쳐 소수 인종의 목소리가 정치 과정에서 배제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출생시민권 폐지는 미국 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 미국은 인구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일할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 만약 이민자와 그 자녀들이 합법적으로 일하기 어려워진다면, 미국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출생시민권 제한이 가져올 사회적 비용은 매년 9,000명에서 3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원정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이익을 크게 상회한다.
출생시민권은 단순한 이민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과 직결된 문제다. “모든 이에게 동등한 기회를 보장한다”는 미국의 오랜 약속이 행정명령 하나로 무너져선 안된다. 불법 이민을 줄이겠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정책이 오히려 더 많은 불법 체류자를 양산하고, 미국 사회의 통합을 저해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