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좀 먹어봐” 보기만 해도 싱싱한 깻잎과 부추를 한 웅큼 담아 건네어 준다. 내가 다니고 있는 성당에서 알게 되어 가깝게 지내고 있는 언니인데 손 재주가 좋아 한국에서는 헤어 디자이너로 일을 하였다고 했다.
그 덕분에 내가 몸이 아파 1년 가까이 치료받는 동안 머리를 손수 잘라주고 다듬어 주었는데 그런 언니가 텃밭을 가꾸는데도 탁월한 능력이 있다. 제때에 씨를 뿌리고 정성껏 돌보는 그녀의 텃밭에는 계절에 맞는 채소들로 가득하다. 나에겐 이름도 낯선 풀인데 뜯어서 삶은 뒤 무쳐 놓으면 쌉싸름 하게 맛 좋은 나물들도 제법 많다.
“어머, 이건 뭔 데 이렇게 맛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나 에게 매번 이름을 말해 주는데 모양과 이름을 지금까지도 구분 못하는 나를 보고 언니는 웃으면 그냥 먹기나 하라고 한다. 아무튼 나는 부지런하고 살뜰한 이웃 덕분에 다양한 채소들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나도 남편과 함께 몇 년 전에는 제법 그럴싸하게 밭을 만들어 상추, 깻잎, 오이, 토마토 등을 골고루 심어 보았다. 열매 맺는 것이 신기해 흐뭇하게 바라보고 맛있게 따 먹기도 했는데 끈질기게 올라오는 잡초와 씨름하느라 지치는 바람에 두손 들고 다시 잔디로 덮어 버렸다. 남편과 나는 둘 다 작물을 키우는 데는 소질이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친정 엄마의 마당에도 작은 텃밭이 있는데 그곳의 농부는 돌아가신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워낙 부지런하셔서 텃밭 가꾸는 일도 좋아하셨다. 엄마는 사실 농사 일을 잘 하지 못하신다. 내가 엄마를 닮은 모양이다. 아버지가 관리하는 앞마당 텃밭에는 오이가 주렁주렁 달렸고 고추가 빼 곡이 열렸다. 아욱이며 상추와 부추는 자주 뜯어 이웃들에게 나누어 줄 만큼 풍성하게 자랐고 뒷마당 텃밭에는 감자와 겨울 김장용 배추, 무가 때에 따라 심겨지고 자라났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혼자 아무것도 할 줄 모르신다고 걱정하셨는데 아들이 매주 들러 땅을 일궈주고 씨를 뿌리고는 그럴듯한 농부역할을 톡톡히 해 주었다. 엄마는 늙은 농부가 가고 젊은 농부가 왔다며 아들 듣기 좋아라 농담을 다 하셨다. 오빠도 처음엔 어렵고 힘들어 하더니 지금은 밭 모양도 예쁘게 다듬어져 있고 수확물도 제법 잘 나와 친정 식구들 여러 집이 골고루 나눠 먹을 수 있다 하니 꽤나 능숙한 농부가 다된 모양이다.
지난주엔 우리 집 작은 아들이 자기도 텃밭을 만들어 여러가지 심어 키워 보고 싶다고 말하더니 커다란 삽을 하나 사왔다. 레스토랑에서 서브 셰프 로서 일하며 요리를 배우고 있는 아들은 채소들을 직접 재배하고 바로 따다 음식을 만들면 좋겠다면서 오이도 심고 고추도 심고 허브도 몇 가지 심겠다고 큰 소리 치고는 땅을 파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나오는 잔디 때문에 결국 덮어 버린 나보다는 인내심을 가지고 해야 할텐데 매일 아침 물을 주고 잡풀을 뽑아내야 하는 걸 알고는 있는지 모르겠다. 주변엔 자그마한 텃밭을 만들어 여러가지 채소들을 직접 심어 먹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농사에 일가견이 있는 몇몇 어르신들은 규모를 크게 하여 제법 많은 야채들을 키워 판매를 하기도 하신다. 농사에 재주 없는 나는 정성껏 키워 탐스럽게 자란 채소들을 사 먹거나 이웃 언니가 주는 것을 받아먹는 걸로도 충분히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나도 직접 농사를 지어볼까? 고민만 하던 참이었는데 아들이 텃밭을 만들어 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때다 싶어 “맘껏 꾸며 보거라.”했다. 아들은 다 계획이 있다며 큰 소리 치고 있는데 아무리 작은 텃밭이라도 부지런히 움직이며 살피는 수고가 있어야 열매 맺을 수 있다는 걸 땀 흘려보면 알게 될 것이다. 아직 땅만 조금 파 놓았을 뿐인데 나도 엄마처럼 젊은 농부가 생긴 거 같아 든든했다. 너무 이른 설렘이지만 아들의 텃밭에서 싹 틔우고 열매 맺을 채소들을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