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그레이, 삶의 한 가운데서] 믿음의 여정

오래전 몽고메리로 이사 와서 처음 다닌 성당은 성 베다(St. Bede)이다. 나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지만 남편 따라 아이들을 데리고 매주 성당에서 미사를 봤었다. 이번에 이 성당의 100주년 기념미사에 참석하며 나에게 믿음의 바탕이 되었던 지난날의 우연이 아니었던 운명 같은 일들을 떠올렸다.

나는 종교 없이 성장했다. 어릴 적 산에 가면 절에 가서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했다. 탑을 돌며 소원을 말했지만 정작 불교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는 없었다. 그리고 고등학교때 집은 안양에 있었고 학교는 서울의 안국동에 있었다. 안양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려서 만원버스로 갈아타 광화문을 지나 안국동으로 가는 등하교를 했다. 그래서 고3때는 공부에 전념한다는 핑계로 덕수궁 옆 영국대사관을 끼고 있는 성공회 서울성당의 기숙사에서 지냈다. 그때 성공회 성전은 머리를 식히는 쉼터였다.

더구나 대학 4년, 명동에 가서 연극을 보거나 ‘돌체’ 음악감상실에 들렸다 꼭 찾아갔던 곳은 명동성당이었다. 성전에는 들리지 않고 입구 왼편에 있던 성모상이 좋아서 가까이 있던 바위에 앉아서 성모상을 바라보길 즐겼다. 마음이 편안했던 휴식이었다. 그리고 명동 복잡한 골목에 있던 수녀님들이 운영하던 성물 가게에 들려서 예쁜 그림과 좋은 글이 있는 카드를 즐겨 사 모았다. 그것이 기도문이었던 것을 안 것은 한참 후였다.

미국 와서 영어를 배울 적이다. 교수가 준 500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 구약과 신약 성경을 처음 읽으면서 답을 찾는데 집중했었다. 성경을 통한 영어 공부에 몰두했지 말씀의 의미를 빠뜨려서 내 믿음의 근원을 만들지 못했다. 그리고 미군으로 용산에 발령받아 근무하는 동안 새남터의 순교지를 여러번 찾았을 적도 나는 그곳을 역사의 흔적으로 봤지 종교적인 믿음으로 보지 않았다. 그러다 친정어머니가 명동성당에서 예비자 교육을 받고 가톨릭으로 입문했을 적에 명동성당에서 처음으로 미사를 참관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위압당했다.

독일에서 근무하는 동안 유럽 여러 지역을 여행 다니며 찾아본 많은 성당의 구조물에 감탄하면서도 정작 가톨릭이 무엇인지 질문하지 않았다. 누가 나에게 종교를 물으면 “없다” 답했다. 오랫동안 여행지 마다 찾아본 많은 교회와 성당, 독특한 건축과 내부의 장식, 십자가에 끌렸지만 진정한 믿음과 기도의 자세를 몰랐다. 더불어 가톨릭 부모에게서 태어나 종교를 당연시하던 남편은 옆에 앉았던 나 같은 엉터리 신자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의 행적이 그러했으니 성 베다 성당을 10년 다니며 매주 미사를 봤어도 정작 나의 믿음은 뿌리내리지 않았다. 미사를 보고 나오면 마음이 평안해서 좋았지 성찬예식을 받지 못한 것에 안타까움이 없었다. 그러다 한 부제님을 가까이 알게 됐고 그분을 통해서 가톨릭에 진지하게 다가가 예비자 교리 교육을 받으면서 당황했다. 그동안 살면서 익히고 실천하는 생활자세나 관점에 갈등이 왔고 내 속에서 계속 많은 질문과 회의가 일어나 고민했다. 그러나 성경을 읽으면서 차근차근 벽돌을 쌓아 올리듯 종교에 대한 지식이 조금씩 성숙하자 깨우침을 받았다. 다음해 두번째 예비자 교육을 다시 받은 후에야 비로소 바닥에 엎드린 가톨릭 신자가 됐다. 23년 전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내 믿음의 여정은 5살때 본 고모님의 손에 있던 묵주에서 시작됐던 것 같다. 그리고 내 삶의 길에 알게 모르게 나를 끌어당긴 파워가 분명 있었다. 예전에 성물 가게에서 산 카드는 그냥 좋은 글이 아니라 성경의 좋은 말씀으로 나를 인도했다. 내 무지로 미처 깨우치지 못했지만 수십년 이어온 종교와 연관된 나의 행적들이 연결되어 내 믿음의 근원이었음을 인식한다. 그리고 스페인에 가서 순례길을 걸으면서 신의 존재를 확실히 의식하고 십자가 앞에 섰었다.

성 베다 성당의 100주년 기념미사에서 주교님이 100년은 아주 짧은 시간이고 앞으로 더 긴 미래가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미사를 마치고 나오며 들은 성당의 종소리는 카랑카랑한 노인의 목소리 였다. 100년을 사는 사람은 몇 이나 될까? 가끔 남편에게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은 나를 가톨릭 신자로 이끈 것” 이라 말하면 남편은 히죽 웃는다. 솔직히 그의 선교 덕분이 아니라 하느님이 계획하신 마스터 플랜에 축복받은 내 삶이 있었다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