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도시의 품격은 어디서 드러나는가. 화려한 고층빌딩이나 복잡한 도로망이 아니라, 시민들이 함께 숨 쉬는 공원에서 그 도시의 진정한 가치관이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최근 미국 공공토지신탁(TPL, Trust for Public Land)이 발표한 ‘2025년 공원지수’ 보고서(2025 ParkScore index)는 주목할만하다.
TPL이 발표한 공원지수는 도심의 공원 숫자, 주민 접근성, 녹지 비율, 산책로, 1인당 공원 예산 등을 통해 ‘미국 최고의 공원도시’ 순위를 매긴 것이다. 매년 100개 도시를 선정하는 이 순위는 단순한 순위표가 아닌, 도시가 추구해온 가치의 결정체를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할수 있다.
올해 ‘최고의 공원도시’로 선정된 곳은 워싱턴DC였다.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이 2위, 미네아폴리스, 신시내티가 각각 3, 4위를 차지했다. 한인타운의 경우, 애틀랜타는 21위로 ‘상위권 공원도시’로 꼽혔다. 그러나 로스엔젤레스(LA)는 100개 도시 가운데 90위로 거의 최하위권을 차지했다.
워싱턴 D.C.가 5년 연속 최고의 공원 도시로 선정된 비결은 명확하다. 도시 면적의 21%를 공원으로 조성하고, 시민 99% 이상이 도보 10분 이내에 공원에 접근할 수 있게 한 철저한 계획성이다. 이는 단기간에 이룰 수 없는 성과다. 무리엘 바우저 워싱턴DC 시장이 언급했듯 “공원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의 결실이다.
캘리포니아의 어바인이 2위에 오른 것도 우연이 아니다. 과거 군사기지였던 부지를 1300에이커 규모의 ‘그레이트 파크’로 탈바꿈시키는 장기 프로젝트는 도시의 미래 비전을 보여준다. 1인당 연간 681달러라는 과감한 투자는 공원을 단순한 녹지가 아닌 도시의 핵심 인프라로 인식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지난해 25위에서 올해 21위로 상승한 애틀랜타도 주목할만하다. 특히 애틀랜타는 공원 접근성이 좋다는 점이 높이 평가받았다. 애틀랜타 주민의 82%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공원이 있으며, 주민 1인당 $272달러의 예산을 공원에 사용했다고 저스틴 커틀러(Justin Cutler) 애틀랜타 공원국장은 설명한다.
반면 최하위를 차지한 LA의 추락은 안타깝다. 5년 전 중위권(49위)에서 90위로 하락한 배경에는 구조적 문제와 투자 부진이 자리한다. 150만 명 이상의 시민이 가까운 곳에 공원을 이용할 수 없고, 저소득 및 유색인종 거주 지역의 공원 면적이 고소득 백인 지역보다 최대 80% 적은 것이 LA의 현실이다. 특히 LA의 난개발은 ‘공원없는 황량한 도시’를 만들고 있다. 아파트 단지와 상업 시설은 끊임없이 확장되는데, 공원은 ‘남는 공간’에 배치되는 것이 LA의 현실이다.
‘공원지수’는 공원이 단순한 여가 공간이 아닌 사회적 형평성의 지표임을 일깨운다. TPL의 여론조사에서 따르면, 응답자의 66%가 “공원에서 낯선 사람과 처음 대화를 나눴다”고 말했다. 공원이 사회적 연결의 장이자 공동체 형성의 기반임을 보여준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공원의 가치는 더욱 부각되고 있다.
이 보고서를 발표한 TPL 공원리서치(Parks Research) 윌 클라인(Will Klein) 국장은 “공원 순위는 도시가 지난 수십 년간 어떤 가치를 중심으로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말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음 100년을 위한 방향 전환”이다. 도시 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공원을 도시의 핵심 인프라로 인식하는 전환적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공원은 도시의 허파이자 영혼이다. 그 도시가 얼마나 시민을 배려하고, 미래를 준비하는지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한인들도 이제 집 주변의 공원에 관심을 갖고, 살고 있는 도시 정부가 공원을 통해 도시의 품격을 높이고, 진정한 의미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도록 촉구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