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 일이 정말 많다. 그 중에서도 정말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바로 인간관계가 아닐까?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다. 인간의 신체적 능력은 어느 하나 동물보다 뛰어난 것이 없고, 인간이 자랑하는 지능조차도 혼자서는 무용하다. 그래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흔히 ‘정을 나눈다’는 말을 하듯 정서적인 측면에서도 인간관계는 중요하다.
하지만 인간관계가 늘 즐겁고 편안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많은 관계를 유지하거나, 감정적으로 소진되는 관계를 지속하다 보면 심리적 피로가 누적되곤 한다. 이미 쌓아온 관계 맺음의 경험치가 우리에게 새로운 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안기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서로의 차이점을 이해하고 맞춰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마음에 조금씩 생채기를 내고, 한순간의 권태기를 겪어내야만 한다는 사실 또한 안다. 하지만 그 지난한 과정을 또다시 거쳐야 한다는 생각에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기 전에 두려움과 귀찮음이 생긴다. ‘굳이 내 에너지를 소비해가며 이 관계를 겪어내야 할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 시점에, 왜 인간관계에 휘둘리며 지내야 하는지 회의감이 고개를 드는 것이다.
만나면 이상하게 기운이 쭉쭉 빠지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만나기만 하면 자기 이야기만 쏟아내고, 타인의 고민에는 관심조차 없다. 이런 사람은 친구가 아니다. 오히려 타인의 에너지를 빨아먹고 살아가는 ‘멘탈 뱀파이어’다. 주구장창 앓는 소리만 늘어놓는 사람, 남 잘되는 꼴은 곱게 못 봐주는 사람, 눈치 없는 말 한마디로 ‘갑분싸’(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진다) 만드는 사람, 자신에게 주목하지 않으면 삐치는 사람, 전혀 안 그런 척하더니 뒤에서 은근히 뒷담화 하고 다니는 사람, 이래도 싫고 저래도 싫고 불평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 ‘라떼’ 없이는 대화가 안 되는 사람…지금도 우 리 옆에서 에너지 쪽쪽 빼가는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엮이면 피곤해지는 사람들이다. 살면서 한번은 그런 사람을 만난다. 우리의 에너지를 쪽쪽 빼가는 그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심지어 내가 원하지 않을수록 더 엮인다! 악의가 있어 보이는 건 아닌데 어디 대놓고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그러니 더 답답할 노릇.이다.
인간은 고슴도치와 같다. 너무 가까이 하면 가시에 찔리고, 너무 멀리하면 추워진다. 나이가 들면 혼자가 편하다‘는 말을 듣는다. 나이가 들면 인간관계는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해진다. 에너지를 소모하는 부정적인 관계나 의무감으로 유지하던 관계에서 벗어나게 되며, 서로의 인생 방향이 달라짐에 따라 관계도 변화한다. 불필요한 관계에서 벗어나면 자신을 위한 시간이 늘어나고 안정과 평온함을 얻을 수 있다. 젊을 때는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기준에 맞추려는 경향이 강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누구인지 더 잘 알게 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남과 비교하는 것에서 자유로워진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보다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그리고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는 의무감도 줄어든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혼자 있을 때 하고 싶은 일을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즐길 수 있다. 누군가에게 맞추지 않아도 되고 자기 리듬대로 살 수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게 된다. 고요함 속에서 차 한잔, 좋은 음악, 독서 같은 것에서 깊은 만족을 얻는다. 혼자가 행복한 이유는 내가 원하는 삶을 찾고, 내면의 평온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계는 신뢰와 애정에서 비롯해 그것으로 유지된다. 상대에 대한 애정 없이는 진심을 전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날 수 없고, 결국 진심을 전하는 일은 상대가 내 진심을 원한다는 믿음으로 가능하다. 애정과 신뢰가 무너진 관계는 이미 허상이다.
요즘 주변에서 ’관계의 보류‘를 신청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대부분 상대방에게 선언은 하지 않지만, 일방적으로 서서히 관계를 끊게 되는데 ’아, 시간이 좀 필요한 시기구나‘라고 이해를 하면 그 관계는 유지될 확률이 높고, ’갑자기 저 친구 왜 이러지?‘라며 이유에 집착하면 그 관계는 끊길 확률이 높다. 나는 오해를 쉽게 하는데 익숙한 사람들이 불편하다. 나 스스로가 빠르게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내가 어떤 속단을 하려고 하면 생각을 보류하거나 여러 각도로 생각하려는 편이다. 누군가는 나의 이런 부분이 답답하고 피곤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상대의 의도를 상상하는 것이 더 피곤하게 느껴진다. 내 기운을 뺏는 인간관계에 너무 많은 생각과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사람 관계는 참 어렵다. 믿지 않고는 깊은 관계로 나아갈 수 없는데, 믿다 보면 꼭 상처 받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어떻게 나를 지켜낼지를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도 지켜내고 좋은 관계도 지켜내고 싶다. 이렇게 힘든 날이면 내가 튀어나온 부분과 각이 겹치지 않는 다른 관계로 위로를 받는다. 공자의 말은 나에게 일깨움을 준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으니, 그 중 나보다 나은 사람의 장점은 가려서 따르고 나보다 못한 사람의 단점을 보고서는 그것을 바로잡는다.‘ ’반면교사 (反面敎師)‘라는 말은 이 구절에서 유래한다. 다른 사람의 잘못된 점을 보고 나 자신의 교훈으로 삼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직 미숙해서 슬프다. ’관계 어른‘은 언제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