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나라, 미국에서의 삶은 그 자체로 인터내셔널이다. 앞집에 사는 룻과 쟌은 각각 아일랜드와 독일 출신 배경을 가지고 있다. 세탁소에서 일하는 시슬은 스페인어가 모국어이다. 한인 이민자의 정체성을 가진 내게 김기태 작가의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그 제목이 눈에 띄었다.
미국에 살면서 한국 상황에 안테나를 높이 세워도, 한국은 이곳에서 참 멀다. 그런 내게 김기태의 소설은 사회 여러 분야를 새롭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케이팝의 팬덤 문화, 외국인, 노동과 사랑, 교육, 노인… 한국에서 다른 나라 출신의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이야기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모색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맘에 다가왔다. 책을 읽으면서 오래 전에 먹었던 아이스크림 ‘보석바’가 생각났다. 그의 담담한 문장 사이에서 보석바에 박힌 얼음 보석이 자꾸 반짝거려서.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는 9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그 가운데 두 개를 소개해 보련다. ‘세상의 모든 바다’(세모바)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케이팝 그룹이다. 이 그룹을 “블랙핑크 만큼 매혹적일 뿐 아니라 U2처럼 사회적인 그룹”이라고 소개한다. 세모바는 여러 대륙 출신과 인종으로 구성하고 있다. 멤버들은 인권과 환경 보전을 위해 애쓰며, 그들의 실제 이야기가 가사로 쓰인다. 이런 케이팝 그룹이라면 나도 그들의 팬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정도였다. 세상의 모든 바다는 이어져 있다는 세모바의 세계관은 작가가 이 책 전체에서 말하고 싶은 주제 같다. 그리고 작가는 가까이 있는 사람과 일상의 소중함을 기발하고, 세련되고, 담담하게 표현한다. 아니, 외친다.
표제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는 권진주와 김니콜라이가 나온다. 진주는 내국인이고 니콜라이는 고려인 4세로 외국인이다. 두 사람은 중학교 때 학교에 내야 할 돈을 내지 않아 교무실로 불려갔던 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두 사람은 스물다섯 살이 되어 우연히 마주친다. 진주는 마트에서 일하고, 니콜라이는 자동차 하청업체에서 일한다. 두 사람은 동네에 아는 사람 한 명쯤 있는 것이 좋아 가끔 만난다. “자아실현 같은 건 모르겠지만 견딜만한 일을 하고, 지글지글 보글보글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삶” 정도면 괜찮다고 여기다가도 불안정한 삶을 걱정하는 젊은이들이다.
두 사람은 큰 돈을 벌지 못한다. 둘은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방 두 칸짜리 집으로 이사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밈을 보다가 알게 된 인터내셔널가를 들으면서 이삿짐을 푼다. 이 노래가 노동자 해방과 사회 평등의 내용을 담고 있음을 나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둘은 ‘친한 사이’로 관계를 규정한다. 이 소설에서 두 사람을 엮어 ‘그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각각의 이름이나 두 사람이라는 표현은 독립적인 개인을 존중하면서 그 둘의 연대를 응원하는 듯하다. 김기태 작가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공존과 연대의 방식을 참신하고 차분하게 보여준다.
인터내셔널인 나의 이야기도 덧붙여 본다. 나에겐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들이 있다. 공교육을 마치고 십일 년째 나와 붙어 살고 있다. 아들, 산이는 요즘 ‘일하고 싶다’ ‘혼자 살고 싶다’고 말한다. 산이 생각을 현실로 이루기에는 난관이 많으므로 그의 외침이 안타깝다.
하루는 산이와 함께 장보러 샘스클럽에 갔다. 금발의 수수한 여인이 다가와 산이의 나이를 물었다. 서른두 살이라고 하자 여인의 아들도 다운증후군이라고 말했다. 나이를 물은 건 말을 걸고 싶어서 그랬나 보다. 여인은 지지스 플레이하우스를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셀폰으로 그 홈페이지를 찾아 보여주었다. 정보 저장을 위해 나보고 셀폰 화면을 사진으로 찍으란다. 며칠 뒤에 코스트코에서 짧은 은발의 여인이 또 산이의 나이를 물었다. 그 여인의 아들은 마흔두 살이라고 말하며 지나갔다. 다시 며칠 후, 남편과 산이가 장을 볼 때 또 다른 여인이 나타나 말을 걸었다고 한다. 세 천사가 찾아온 것일까.
GiGi‘s Playhouse는 다운증후군 사람들을 위한 비영리 단체다. 지지스 플레이하우스의 여러 프로그램에 신청서를 넣었다. 산이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나의 이메일을 열어본다. “마미, 플레이하우스에서 이메일 왔어”, 산이가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