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14
영화 [보통의 가족]은 헤르만 코흐의 소설 [디너]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미국이나 이탈리아에서도 영화로 제작되었던, 윤리적 딜레마를 다룬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허진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설경구, 장동건, 김희애등 연기파 배우들이 함께 했다.
영화는 서로 성향이 다른 두 형제사이에서 벌어지는 가족간의 균열과 파국을 결코 ‘보통’이라 부를 수 없는 극적인 스토리로 그려낸다. 그 중심에는 디너모임인 가족모임이 있다. 그들의 모임이 열리는 곳은 집이 아닌 고급 레스토랑이다. 화려한 음식과 와인을 곁들인 저녁 테이블의 대화 또한 얄팍한 배려와 번지르한 칭찬으로 기름지다. 하지만 매끄러운 겉치레 속에는 어둡고 깊은 균열이 감춰져 있다.
불안한 평화가 깨지는 파열음은 그들의 아이들이 노숙자를 향해 저지른 무차별적 폭력을 계기로 밖으로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아무도 모를 것이라 여겼던 아이들의 행동이 CCTV에 고스란히 찍혀 뉴스에 보도되고 경찰은 수사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두 가족은 체면과 윤리, 성공과 정의사이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갈등한다. 그 갈등은 억눌렀던 감정을 들춰내며 사회의 이목과 가족의 의무감으로 눌러야 했던 은밀한 욕망의 문을 열게 한다.
형인 재완(설경구)은 유능한 변호사이다. 누구보다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하지만 딸의 행동을 사춘기적 실수라고 치부하며 진실을 외면한다. 반면 형의 말을 순순히 따르던 동생 재규(장동건)는 의사로서 양심에 따라 아들을 자수시키려 한다. 재규의 아내(김희애)는 아이의 장래를 망친다며 그를 강하게 비난한다. 그런데 그녀는 쉬지 않고 음식을 먹고 와인을 마신다. 멈추지 않는 식욕은 다른 해결책을 생각해 내야 한다는 듯 이기적인 젓가락질을 끊임없이 하게 한다. 욕망과 회피, 진실과 사랑사이에서 그들의 신념은 조금씩 무너져간다.
사건은 중환자실에 있던 노숙자가 사망하면서 급물살을 타게된다. 폭행 사건이 살인사건으로 전환된 것이다. 죄질이 무거워지면서 재완의 고민도 커진다. 그의 생각을 바꾼 것은 우연히 들은 딸의 속마음이었다.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딸의 잘못된 생각을 알게 된 그는 괴물같은 딸에게 필요한 것은 ‘댓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하지만 노숙자의 죽음을 들은 재규의 입꼬리는 알듯 모를듯 야릇한 표정으로 말려 올라간다. 증인도 없고 당사자도 죽었다면 지켜야 할 정의와 도덕도 함께 사라진 것이라는 해방감, 묘하고 은밀한 미소는 다가오는 불안을 암시하듯 소름 돋게 한다.
그들의 가족 모임은 변함없이 화려하다. 각종 진미와 붉은 와인은 재완이 딸을 자수 시키겠다는 심각한 상황에서도 테이블 가득 차려져 있다. 그러나 다른 마음을 가진 재규는 가족애도 양심도 사라진, 에고와 집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다. 디너 테이블은 재규의 손아래 쓸려 내려간다. 유리잔과 식기, 음식들이 붉은 와인과 함께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진다. 죽여버리겠다는 재규의 외침이 깨진 파편처럼 사방에 튄다.
쓸쓸한 모습의 재완이 담배불을 붙이며 레스토랑 문 앞에 홀로 서있다. 순간, 거침없는 자동차의 굉음과 함께 재완은 공중으로 치솟는다. 원망에 찬 지수(재완의 처)의 눈빛과 어두운 재규의 눈빛이 교차된다. 시야를 가리는 빗물이 앞 유리창에 흘러내리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는 빗물로 가려진 시야처럼 정의가 구현되는 선명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형이 죽는 순간 정의는 묻히고 갈등은 또 다른 딜레마로 되살아난다. 나는 영화가 윤리적 딜레마라는 이슈 뒤에 숨겨진 가족간의 질투와 혐오, 비교와 경쟁, 억눌린 욕망 같은 불편한 관계를 여실히 들춰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감춰야 하는 감정들이 쌓여감에 따라 그들의 테이블은 더욱 화려해져 가고 그만큼 균열은 더 깊게 벌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들이 진솔되게 자식을 위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문제를 바라봤다면 이런 비극은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말로 서로를 동일시한다. 잘 안다는 믿음, 언제나 함께 할 거라는 착각, 그것들은 때때로 치명적인 오해를 만들고 익숙함의 함정에 빠져들게 한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나의 테이블위의 메뉴를 하나하나 되짚어본다. 과연 당신의 디너테이블에는 무엇이 올라가 있을까. 이 영화가 곰곰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