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를 읽을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사슴’이다. 천하가 어지러울 때 강호의 영웅들은 모두 사슴을 쫓았다. 사슴은 왕권과 천자를 상징한다. 그 지리적인 배경은 황허 유역의 중원이었다. 중국의 역대 왕조가 이곳을 중심으로 역사를 만들었다. 중원에서 강호의 군웅들이 사슴을 잡으러 나서면 권력의 중심이 사라진 난세의 예고였다.
중국을 통일한 한고조가 조용히 한신과 더불어 여러 장수들의 군사 통솔능력에 대해 말을 나누었다. 고조가 한신에게 묻기를 “나같은 사람은 얼마나 되는 군대의 장수가 될 수 있겠는가?”하니 한신이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10만 명의 장수에 불과합니다.” 그러자 고조가 말했다. “군은 어떠한가?” “신은 많을수록 더욱 좋습니다.” 고조가 웃으며 말했다. “많을수록 좋다면 어찌 나에게 사로잡히는 바가 되었는가?” 한신이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군대의 장수가 될 수는 없어도 장수의 장수가 될 수는 있습니다. 이것이 신이 폐하에게 사로잡힌 까닭입니다. 또 폐하는 하늘이 준 것이지 사람의 힘은 아닌 것으로 압니다.”
그 후 진희가 거록수에 임명되어 한신에게 작별인사를 갔을 때였다. 한신은 진희의 손을 잡고 좌우를 물리친 다음 탄식하며 말했다. “공의 임지는 천하의 정병이 있는 곳일뿐더러 공은 폐하의 신임과 사랑을 받고 있지 않은가. 가령 남이 공이 배반하였다는 말을 해도 처음에는 믿지 않을 것이고, 두 번 말하면 의심할 것이고, 세 번 말하면 그때는 성내어 스스로 공을 치러 올 것일세. 그때 내가 공을 위하여 안에서 일어나면 가히 천하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일세.” 진희는 원래 한신의 유능함을 알고 있었으므로 “삼가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하고 임지로 떠났다.
고조 10년 진희가 과연 배반했다. 고조는 친히 군대를 거느리고 진희의 토벌에 나섰으나 진희와의 내응을 약속한 한신은 병을 핑계삼아 따라가지 않고 은밀히 사람을 진희에게 보내어 “공은 다만 군사를 일으키라. 그러면 내가 여기서 공을 돕겠노라”라고 잔하고 밤에 거짓 조서를 내려 관가에 갇혀있는 죄수들을 석방하고 여후와 태자를 습격하기로 하였다. 각 부서와 책임자를 모두 정하고 진희의 회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사인(舍人)이 한신에게 득죄하여 한신이 그를 죽이려 하자 사인의 아우가 “고변이오. 한신이 배반하고자 합니다”라고 여후에게 보고했다. 여후는 한신을 부르고자 하였으나 혹시 오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거짓으로 진희를 토벌하기 위해 친정 중인 천자가 보낸 것처럼 속여 한신이 들어오자 포박하여 한신을 베어 죽였다. 죽음에 임하여 한신은 최후 진술에서 “내 괴철의 계책을 채용했었더러면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아녀자의 속임수에 떨어졌으니 어찌 하늘이 시키는 일이 아니겠는가.” 여후는 한신의 삼족을 멸했다.
고조는 진희를 토벌하고 돌아와서 한신의 죽음을 듣고 “한신이 죽을 때 무어라고 말하던가?”라고 물었다. “그는 괴철의 계책을 채용하지 않았음을 한탄했습니다.” “괴철을 잡아오도록 하라.” 괴철이 잡혀오자 고조가 물었다 “네가 회음후에게 배반하라고 가르쳐 주었더냐?” “그렇습니다. 신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신의 계책을 채용하지 않더니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만일 그가 신의 계책을 채용했더라면 폐하께서 어찌 그를 무찌를 수 있었겠습니까?” 고조가 성내어 말했다. “이 놈을 삶아 죽여라.” 괴철은 조금도 두려워하는 빛이 없이 태연히 말했다.
“진나라가 그 사슴을 잃자 천하가 모두 그 사슴을 쫓았습니다. 결국은 재주가 높고 발이 빠른 자가 먼저 얻게 되었습니다. 도척의 개가 요임금을 짖은 것은 요임금이 어질지 않기 때문이 아니고, 그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짖은 것입니다. 그때에 신은 다만 한신을 알았을 뿐, 폐하는 알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천하에는 날카로운 칼을 갈면서 폐하처럼 그 자신이 천하를 차지해 보려고 한 사람이 많았으나 그들의 힘이 미치지 못했을 뿐입니다. 폐하께서는 그들을 모두 삶아 죽여야 하겠습니까? 이미 죽음을 각오한 괴철의 대담함에 고조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이 자를 석방하라.“ 고조는 괴철을 용서했다. ‘중원에서 사슴을 쫓는다는 ’중원축록(中原逐鹿)‘의 유래다.
1949년 이후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나라다. 중국에서 공산당은 신과 같은 존재다. 보이지 않고 접할 수도 없지만 어디에나 존재한다. 중국의 최고지도자들은 떠들썩한 선거 대신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결정된다. 이때 당은 마치 해자와 경비병에 둘러싸인 성채와도 같다. 성 밖에 있는 사람들은 성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결코 알 수 없다. 물론 안에서 새어나오는 소리를 듣고 짐작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부패 사건이나 파벌 간의 충돌, 정책 실패에 따른 사상자들이 성 밖으로 던져지기 전까지는 공식적으로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중원이 소란하다. 중국 권부의 이상 기류를 전하는 뉴스가 부쩍 늘고 있다. 모든 권력을 장악한 것으로 평가받았던 시진핑의 퇴진 가능성이 보도되고 있다. 겉으로는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고 정상적인 국가인 듯 보이지만 그 물밑 속에서는 권력을 향한 암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미 오는 8월 27일부터 30일까지 중국의 지도부를 전면 개편하기 위한 중국공산당 제4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4중전회)를 열기로 하면서 초미의 관심은 시진핑 이후 중국을 이끌어갈 지도자는 누구이며, 또한 앞으로 중국이 세계속에 어떠한 모습으로 나아가게 될지에 모아지고 있다. 중원의 사슴을 쫓는 사내들 발길이 우선 바빠질 듯하다. 우리가 중국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두 나라의 지리적 근접성과 경제적 상호의존성, 그리고 북한문제 등 안보와 관련된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중국은 너무 강해도 문제이고, 너무 난세여도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