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운동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체력 단련을 시작했다. 혼자YMCA를 드나들며 묵묵히 구슬땀을 흘려왔다. 여름의 문턱으로 들어선 어느 날, 운동을 마치고 나오다 길목 어귀 8K Run대회 광고에 눈길이 멈췄다.
지난번 한국 방문에서 만났던 오랜 친구가 런닝을 시작했는데, 체력도 키우지만 기분이 참 상쾌하다고 친구들에게 적극 추천을 했었다. 나와는 먼 얘기라며 흘려 들었지만 가슴에 번호표를 달고 10K를 달린 친구의 사진에서는 뜨거운 에너지와 충만한 자신감이 뿜어져 나왔다. 대회에 나가 코스를 뛴다는게 어떤 느낌일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던 건 그때부터 였다.
그날 저녁, 몽고메리 다운타운에서 런닝 대회가 있다고 가족에게 소개하며 참가 의향을 물었다. 생각 외로 가족들 반응이 따뜻했다. 방학이라 집에 돌아온 스포츠맨 대학생 둘째 아이와 고등학생인 막내, 50대 중반인 남편도 특별한 추억이 될거라며 호응했다. 특히 막내는 엄마가 하는데 내가 못하겠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럼 모두 동의한 거다. 마음 변하기 없기!” 하며 바로 온라인 접수를 해버렸다. 한달여의 기간동안 각자 알아서 훈련하기로 했다. 나는 그 날부터 더 열심히 연습했다. 일주일씩 거리를 늘려가며 적응해 나갔고, 마지막 주는 실전처럼 5마일을 뛰다 걷다 몸이 익숙해지도록 계획했다. 바쁜 남편도 틈틈이 연습하며 체력을 키워 나갔다. 둘째는 테니스나 농구로 단련되어 문제 없었다. 천하태평 막내는 대회날이 다가와도 연습은 커녕 그저 젊음을 무기삼아 자신만만했다.
그렇게 각자의 시간은 흘렀고, 처음으로 참가하는 가족 런닝 D-Day는 다가왔다. 짧은8K(4.97mile) 동네 대회이지만 긴장감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남편이 미리 받아온 번호표를 비장한 각오로 운동복 앞 편에 조심스레 달았다. 심장 박동수가 이미 요동치며 긴장으로 온몸이 전율했다. 매일 무더운 날씨의 연속이었는데 대회 당일날은 흐렸다. 드디어 몽고메리 다운타운 경기가 열리는 본부 앞, 사전 설명을 듣고 스트레칭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니10대부터 7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모여선 150여명의 선수들은 출발 신호음과 함께 앞으로 뛰어나갔다. 우리 가족도 무리 안에 휩싸여 나아갔다. 아이들과 남편은 꽤 빠르게 전진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주위가 고요해지고 내 숨소리만 들렸다. 런닝머신 위에서의 연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아스팔트 도로는 거칠었고 날씨는 흐리고 습했다. 어느 새 남편과 둘째는 전방 시야에서 사라졌고, 페이스 조절을 못하고 초반에 열심히 달리던 막내는 나보다 뒤쳐졌다.
나는 차분히 연습한대로 오르막길에선 빠른 걸음으로, 평지나 내리막길은 런닝으로 호흡을 가다듬으며 페이스를 지켜 나갔다. 내 몸에 귀 기울이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런 가운데에도 도로에서 박수치는 응원 소리와 조용한 주택가의 고즈넉한 풍경도 눈에 스쳐갔다. 음수대에서 컵을 건네받아 물 한모금으로 목을 축이기도 하며 마라토너가 된 듯한 기분도 느껴보았다. 1마일씩 지나갈 때마다 숨은 차오르고 다리 근육도 당겨왔지만 목적지가 가까워진다는 희망에 달려나갈수 있었다. 3마일이 지났을 무렵, 시커먼 구름이 하늘을 채우더니 세차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줄기를 흠뻑 맞으면서는 학창 시절에 시원하게 비 맞으며 친구들과 뛰어다녔던 기억이 떠올라 그 또한 즐거웠다.
빗물로 가득차 질퍽한 운동화로 힘겹게 걸음해 나갈 무렵 어렴풋이 결승점이 보였다. 뚜렷한 목표가 각인되자 지쳤던 다리가 재충전되고 시선은 골인 지점에 고정된 채 마치 마리토너가 주경기장에 들어와 마지막 한바퀴를 전속력으로 향하듯이 내달렸다. 이미 도착한 선수들과 시민들의 박수 소리에 힘입어 나는 가빠진 호흡을 토해내며 마침내 결승선을 통과했다. 먼저 들어온 둘째 아이와 남편은 환한 웃음으로 완주를 축하해주었다. 으시대던 막내는 생각과는 달리 엄마보다 뒤늦게 들어왔지만, 난생처음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값비싼 응원과 환호를 경험했다.
시작은 함께였지만 대회가 진행 되는 동안은 오롯이 자신과의 싸움이고 인내라는 사실은 우리의 인생 여정과 비슷했다. 그 과정을 위한 노력 또한 본인이 만들어가야 한다는 교훈도 체험했다. 그런면에서 이번 가족 이벤트는 대성공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던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매년 도전해볼까 하는 의사를 비췄다. 완주의 기억이 내면 깊숙히를 단단히 채워 주었으리라 믿는다. 가족에게 추억될 멋진 조각도 또 하나 쌓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