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우화의 ‘양치기 소년’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양치기는 사람들이 모르는 정보를 생산한다. 양과 늑대에 대한 정보가 사람들에게 필요하지 않으면 모를까, 사람들은 늘 양과 늑대와 관련된 정보에 민감하다. 양치기가 초원에서 양을 지켜야 사람들은 마을에서 일상을 영위할 수 있다. 사람들은 그래서 양치기가 구름을 늑대로 잘못 봤다고 해도 믿을 수밖에 없다. 증거가 있어서 믿는 게 아니라, 믿어야 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정보 흐름이 비대칭적으로 이루어지니까, 양치기는 아마도 이 점을 분명히 알고 늑대가 왔다는 거짓말을 반복적으로 외쳤을 것이다.
‘양치기 소년’은 거짓말 하면어떤 결과가 벌어지는지, 거짓말이 얼마나 큰 피해를 가져다주는지를 일깨워주는 이야기이다. 양치기 소년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있다. 그것이 여전히 우화로서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이유이다. 다만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은 재미를 위한 것이었을 뿐 애초 불순한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것이 가짜뉴스라는 사실과 그로 인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은 변할 수 없다. 진실을 모호하게 만들고 신뢰를 파괴함으로써 공동체의 존립자체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가짜뉴스의 대부분은 양치기 소년의 순박한 의도와는 달리 처음부터 악의적인 목적을 가진 경우가 많다. 매체의 다양화와 정보의 실시간 공유를 통해 지구촌 단위로 이뤄지는 뉴스의 파급력은 가짜뉴스를 더 이상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 정도로 치부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특정 정치세력은 정적에게 타격을 가하고 자신의 실책을 덮거나 과장하기 위해 가짜뉴스를 날조한다. 적잖은 생산자는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가짜뉴스를 지어낸다. 특히 가짜뉴스는 미끼인 일부 팩트(fact)에 목적인 픽션(fiction)을 잘 버무려 꾸며낸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기 쉽다.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SNS 등 빠른 통신수단을 이용하게 되면서 거짓 소문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전파력과 파괴력을 갖게 됐다. 말, 글뿐만 아니라 영상 조작까지 가능해지면서 가짜뉴스는 갈수록 확산 추세다.이 시대의 양치기는 우화 속 양치기와 달리 이미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언론 자체가 자본을 낳는 알이 된 지금, 무수한 양치기들이 현란한 거짓말들을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온갖 정보들을 검증할 힘이 사람들에게는 없다. 사람들이 못나서가 아니다. 정확한 정보를 미디어와 각 기관들이 독점하고 있끼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저 미디어가 흘리는 정보만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판단해야 한다. 우화 속 양치기의 거짓말은 사람들이 초원으로 가면 금방 드러나지만, 이 시대 양치기의 거짓말은 사람들이 초원으로 가도 드러나지 않는다. 아니, 사람들이 정보 검증을 할 만한 초원 자체가 없다.
말과 칼은 두 얼굴을 가진, 닮은 소리다. 타락하면 흉기가 되고 괴물이 된다. 본디 말은 소통의 도구다. 자신을 세우고 서로를 이해하고 진실을 전달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약속이다. 법이 상식과 평등과 정의의 말이라면, 시는 감정과 감각과 느낌의 말이다. 헌법의 말이 정의의 보루라면, 시의 말은 진실의 보루다. “시인은 언어가 최초로 잉태되는 침묵에 귀를 기울이고, ‘말을 빛나게 하기 위해 모여든 밤의 광채’ 속에서 언어의 원초적 기쁨을 되살리며, 언어 스스로 아름다움으로 회귀하게 돕는다. 반면 시인이 죽은 사회는 온갖 거짓말이 넘치는 시궁창으로 변하고, 사람은 오물이 된 말과 함께 바닥에 나뒹군다.” 의사이자 철학자인 막스 피카르트가 시는 ‘지상의 성좌이자 동시에 하늘의 성좌’라고 말한 까닭을, 우리는 곱씹어봐야 한다. 가짜뉴에에 속지 않는 법은 없을까. 가짜 뉴스 판별력은 결국 비판적 사고력이다. 비판적 사고력은 고도의 인지능력이다. 몇 가지 구체적인 도구를 갖추고 훈련한다고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날마다 만나는 다양한 뉴스와 정보는 비판적 사고를 훈련하고 키워나가기 좋은 대상이기도 하다. 일상생활에서 가짜뉴스를 감별할 수 있는 네 가지 체크리스트를 소개한다.
첫째, 모든 지식과 정보는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다. 지식은 아무리 유용하고 당연한 진리처럼 보여도 더 나은 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 더 나은 지식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확신과 아집에 머무르지 않게 된다. 둘째, 그 지식이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어떤 주장이나 논리가 유용하거나 사실에 부합하는지를 따져보기 위해서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것이 근거하고 있는 바탕이 얼마나 탄탄하고 논리적인가를 살펴보는 일이다. 셋째, 제시되는 논리와 정보의 의도를 읽는 게 중요하다. 모든 논리나 지식은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며 목적 지향적 결과물이다. 화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가장 쉬운 길은 해당 발언으로 누가 어떠한 이득을 얻을까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넷째,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게 필요하다. 사실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지 않지만, 의견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기사에는 사실과 의견이 뒤섞여 있다. 특정한 기사나 주장에서 사실과 의견을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은 비판적 사고를 키우는 핵심 도구이다.
우리는 가짜뉴스의 먹잇감으로 봉사할 수는 없다. 가짜뉴스에 속지 않으려면 계속 묻고 정보를 찾아야 한다. 개개인이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의심하고 질문해야 한다. 마르크스는 1848년에 발표한 ‘공산당 선언’에서 전세계 프롤레타리아에게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외쳤지만, 이를 “만국의 뉴스 수용자여 단결하라!”고 패러디하면 어떨까. 뉴스 수용자의 판별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