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수정헌법 14조에 규정된 ‘출생시민권’ (birthright citizenship)은 명확하고 단순하다. “미국 땅에서 태어난 아이는 미국 시민이다.” 이 조항은 남북전쟁 이후 노예 출신 흑인들의 시민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덕분에 수많은 흑인 해방노예의 자손들, 그리고 한인을 포함한 이민자의 자녀들이 미국에서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단순한 원칙이 지금 위기에 처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출생시민권(birthright citizenship) 제한 행정명령이 22개주에 만 금지된다”고 연방대법원이 6월 28일 판결한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은 조지아, 앨라배마 등 28개주에 대해 행정명령을 시행할 합법적 권한을 갖게 됐다.
젊은 한인 부부들은 벌써부터 걱정에 휩싸였다. 조지아, 앨라배마에는 취업, 투자, 학생비자를 가진 젊은 한인 부부들이 많다. 앞으로 이들 부부가 아이를 낳아도, 아기는 미국 시민권을 갖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수 있다. 반면 뉴욕,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한인 아기는 미국 시민권을 받게되는 기괴한 상황이 벌어질수 있다.
물론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트럼프 행정명령이 22개주에만 금지된다”는 뜻이며, “나머지 28개주에 지금 당장 출생시민권이 금지된다”는 뜻은 아니다. 앞으로 트럼프 행정명령을 앞두고 많은 정치인, 지역사회가 정치적,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 시행에는 오랜 법적, 행정적 절차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23개 주 검찰총장들은 이미 트럼프 행정명령에 맞서 법적 싸움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롭 본타(Rob Bonta) 캘리포니아주 검찰총장은 “이번 소송은 단순한 정치적 대립이 아니다. 이는 헌법적 가치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한 필수적 저항이다”며 “대통령이라도 위법을 저지른다면 끝까지 법의 힘으로 막아내겠다”고 밝혔다.
이민자 권리를 침해하는 트럼프 행정명령은 이것 뿐만이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메디케이드나 사회보장국에 이민자의 개인정보를 입수하려 하고 있다. 따라서 수집된 개인정보가 이민 단속에 이용될 가능성, DMV 정보를 통한 이민자 위치 추적 의혹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본타 총장은 “트럼프 행정명령은 법치국가 원칙을 훼손한다. 건강관리 목적 외 개인정보 사용은 불법일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또 LA한인타운 등에서 군대를 동원해 이민자 단속에 나서, 한인 이민자 사회를 불안에 빠지게 하고 있다.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Antonio Villaraigosa) 전 LA시장은 “군복 차림이나 민간인 복장에 얼굴을 가린 요원들이 고성능 무기와 섬광탄으로 유치원 교사, 정원사, 졸업식 참석 가족까지 표적으로 삼고 있다”고 강조한다.
미국 사회는 지금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이민자들의 땀과 눈물로 만들어진 나라가 이민자들을 배척하는 모순적 상황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출생 시민권이라는 헌법적 원칙을 지켜낼 것인가, 아니면 정치적 편의에 따라 변형시킬 것인가.
한인사회의 미래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태어날 일부 한인 자녀들은 시민권이 없는 ‘하위 계층’이 될 수도 있으며, 법앞에 평등한 대우를 받지 못할 수 있다. 이민자라는 이유로, 또는 이민자의 자녀라는 이유로 그 권리가 침해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법치국가라 할 수 없다. 한인 자녀들의 미래를 빼앗는 트럼프 행정명령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