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태어난 손녀딸을 보기 위해 며칠간 집을 비우게 되었다. 막상 떠나려니, 올해 유난히 잘 자라며 내게 기쁨을 주고 있는 작은 텃밭의 채소들이 걱정되었다. 고민 끝에 가까이 사는 올케에게 물을 부탁했다. 바쁘게 직장 생활을 하는 걸 알기에 선뜻 말 꺼내기 쉽지 않았지만, 잘 자라고 있는 식물들을 그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말라죽게 내버려 두는 것도 미안하고, 또 아깝기도 했다.
며칠 후 돌아와 보니, 고추는 꽃과 함께 더 많이 달려 있었고, 상추도 먹을 만큼 자라 있었다. 호박꽃은 먼저 핀 것들이 떨어지고, 새로운 꽃들이 활짝 입을 벌리고 있었다. 봉오리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연둣빛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던 방울토마토는 어느새 붉게 익은 것들이 제법 많아졌다. 하나를 따서 먹어보니, 이렇게 달고 맛있을 수가 없었다. 블루베리도 차례차례 익어가며 소소한 기쁨을 주었다. 매일 아침 한 줌씩 따 먹는 일이 작은 즐거움이 되었지만, 집을 비운 사이 절반 이상을 새가 먹어 치운 모양이다. 하얀 망사를 씌워두었는데 바람에 날려 반쯤 만 덮여 있었던 것이다. 남은 몇 알이 망사 아래로 고개를 내밀며 나를 바라보는 듯했다. 더는 방어할 힘도 빠져, ‘너도 먹고 살아라’는 마음으로 망사를 그대로 두었더니, 약은 새가 그 틈으로 들어와 마지막 열매까지 싹쓸이해 버렸다.
지금도 풍성하게 자란 싹들과 익어 가는 열매들은 올해의 오월을 더욱 빛나게 해준다. 날마다 달라지는 텃밭의 생명들은 내 눈길을 사로잡았고, 그 신비로움에 마음이 벅차오르곤 했다. 줄기를 타고 나오는 작은 점들이 어느새 잎이 되고, 가지를 키우며 다시 줄기를 뻗어가는 모습은, 내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미미한 생명체에게도 마음을 기울이게 만들었다.
새로운 생명들이 만개하는 찬란한 시간, 봄의 절정. 오월은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내가 결혼한 달이자, 아들도 결혼식을 올린 달이기 때문이다. 8년 전, 한국에서 아들의 결혼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공항으로 향하던 차창 밖, 햇살이 물결 위에 부서지던 풍경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 뿌듯함, 기쁨, 안도, 감사 같은 감정들이 물결 위를 떠다니며 내 마음을 흔들었다. 지금은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아들을 바라보며, 어느새 지나온 시간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그날의 햇살은 또 다른 생의 풍경으로 펼쳐지며, 내 마음 한켠을 조용히 적신다.
40년 전, 나의 오월도 눈부셨다.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뒤, 양가에 인사를 마치고 새 살림을 시작했다. 신혼집 정리를 마무리하고 잠시 숨을 고른 어느날, 남편과 함께 장미꽃 만발한 공원을 걷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시절의 나는 모든 게 서툴렀다. 미래를 그리는 일도, 가정을 꾸려가는 일도 낯설었지만, 마치 새싹을 키우듯 내 삶을 하나하나 가꾸어가던 시간이기도 했다. 장미꽃 사이에서 찍은 사진 속, 앳된 내 모습이 지금도 아련하게 마음을 적신다. 내게 오월은 그렇게,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눈부신 시간이다.
서툰 꿈을 품고, 실수도 겪으며 지나온 날들 속에서, 싹은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다. 떨어지고, 또 피고. 그렇게 지금의 내가 되었고, 우리의 가족이 만들어졌으며, 새로 태어난 손녀딸이 그 이야기를 이어간다. 사진 속 젊은 나는 여전히 봄의 햇살을 품고 있고, 할머니가 된 지금도 그 빛을 마음에 품은 채 환하게 웃고 있다. 봄의 끝자락,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생명들을 바라보며 계절의 움직임을 실감한다. 이맘때의 햇살은 한층 더 짙어지고, 바람엔 여름의 기운이 스며 있다. 텃밭의 싹들은 계절을 먼저 알아차리고 묵묵히 자라난다. 작고 조용한 움직임을 보며 나는 배운다. 곧 깊어질 푸르름 속에는 뜨거운 매미 소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텃밭에 서서 바람을 맞는다. 그 속에는 내 웃음소리와, 미래의 손녀의 목소리가 섞여 있다. 이제는 비로소 나는 안다. 이 계절이 내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열매가 아니라, 그 열매를 맺기까지의 모든 순간들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