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병에 걸린 환자들이 자신의 죽음을 마주할 때, 시간에 따라 죽음에 대한 본인의 태도가 바뀐다고 한다. 퀴블러 로스라는 정신과 의사는 죽음을 맞는 사람들의 태도가 5단계로 변한다고 발표하여 널리 알려졌다.
첫 단계는 부정의 단계로,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그럴 리 없다”, “뭔가 잘못된 것이다”라고 고집하는 단계이다.
둘째 단계는 분노의 단계로, “왜 하필 나야?”,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냐”며 화를 내는 단계다.
세 번째 단계는 타협의 단계로, “내가 회개하면 살 수 있을까?”, “이번에 살려만 주시면 새롭게 살겠다”고 후회도 하고 기도도 하는 단계이다.
네 번째 단계는 우울의 단계로, 이젠 자신의 삶의 끝에 섰고, 자신이 없어지면 가족은 어떻게 살까 걱정이 되어 슬프고 우울증에 빠지는 단계이다.
마지막으로 수용의 단계에 이르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단계라고 한다. 죽음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세상의 모든 조건들도 그대로 받아들이는 단계이다.
수용의 단계 혹은 용납의 단계(acceptance)를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세상을 이해하는 단계로 해석한 정신과 의사도 있다. 데이비드 호킨스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도 지옥을 사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천국을 사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수용과 용납의 단계’가 지옥에서 천당으로 넘어가는 문턱이라고 설명한다.
이 세상을 살면서도 천국을 사는 사람들은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있으며, 누구든 다 나와 같은 인간임을 인정하고, 용서하고 사랑한다. 또한 세상은 완벽한 질서와 섭리 아래 운행되며 공평하다고 믿고, 자신의 삶 역시 신과 협력하고 신과 하나로 이어졌다고 믿는다.
반면에, 이 세상을 살면서도 지옥을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디를 봐도 눈물과 슬픔만 보이며, 어디를 가도 위험과 공포뿐이고, 무엇을 봐도 불공평과 잘못, 부정으로 인해 화가 나 있는 사람들이다. 호킨스의 통계에 따르면, 이 세상을 살면서도 천당에 사는 사람들보다 지옥에 사는 사람들이 몇 배는 더 많다고 한다.
이 세상을 살면서도 천국을 살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과업이요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턱인 ‘수용의 단계’를 넘는 과업을 스스로 찾아 이루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제한된 경험과 상처로 인해 생긴 터널 비전만 고집하며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도 ‘있는 그대로의 나’일 수 있고, 조금 더 자라나 어린아이의 버릇을 벗고 어른이 된 자신을 그대로 인정할 수도 있다. 과거의 나의 잘못과 죄도 찾아가서 용서해야만, 죄의 사슬에 얽히지 않고 해방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나이는 어른이 되었어도 실수를 하며, 완전할 수도 전능할 수도 없다는 사실 또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보다 더 성숙하려면 끝이 없고, 인간은 본래 한계를 지닌 존재라는 사실도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내 주위 사람들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잘못과 죄를 용서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 주변의 어떤 사람도 나처럼 불완전하며 죄인임을 인정하고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의 이분법적 판단 습관을 버리고, 내 이웃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누구나 다 자신이 처한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는 존재라는 점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자연과 사회도 내 생각과 판단을 내려놓고, 그 속에 흐르는 질서와 섭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를 올바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과업은 너무 벅차다. 그 벅찬 과업을 이루기 위해 오랜 시간 수행하고 노력해도, 이를 이루는 사람은 많지 않다. 찬송가 가사들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 신도들은 이 세상을 살면서도 천국 생활을 한다고 강조한다.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내 주여 내 맘 붙드사 그곳에 있게 하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친구 되시니, 그 은혜를 간구하면 풍성히 받으리. 햇빛과 비를 주시니 추수할 곡식 많도다. 귀한 열매 주시는 이 주 예수/슬픈 마음 있는 사람 예수 이름 믿으면, 영원토록 변함없는 기쁜 마음 얻으리/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믿어서 거듭나 이 세상을 살면서도 천국을 살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쉬운 방법이 아닐까? 믿는 사람들 중에 진정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하며, 늘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누리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