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주례에서 빠지지 않던 말이 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함께 살라”는 덕담이다. 요즘은 다소 진부하게 느껴져 덜 쓰이지만, 이 말 속에는 오랜 시간 함께 사는 부부에 대한 존중과 축복이 담겨 있다. 사실 부부가 함께 오랜 세월을 살아간다는 것은 인생에서 큰 복 중 하나일지 모른다. 미국의 소셜시큐리티 제도 역시 이 같은 부부의 삶을 배려해 만든 제도가 있다. 바로 ‘배우자 연금 혜택(Spousal Benefit)’이다.
이 제도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배우자의 연금 기록을 바탕으로, 배우자가 충분한 근로 기록이 없더라도 일정 금액의 소셜시큐리티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한다. 특히 자녀를 키우기 위해 직장을 포기했던 전업주부나, 이민 초기 영어와 기술의 장벽으로 인해 소득활동을 하지 못했던 많은 한인 여성들에게 꼭 필요한 제도다.
예를 들어보자. ‘배려남’ 씨는 미국에 정착한 이후 줄곧 일하며 가족을 책임져 왔다. 부인인 ‘배우자’ 씨는 아이들을 키우고 가정을 돌보느라 일을 하지 못했다. 이제 60세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셜시큐리티 연금”이란 말이 귀에 자꾸 걸린다. 하지만 일을 해본 적이 없는 ‘배우자’ 씨는 스스로 연금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해 걱정이 앞선다. “그때 직장이라도 다닐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밀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미국 소셜시큐리티 제도는 일을 하지 않은 배우자도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전업주부, 파트타임 일만 했던 사람, 혹은 40점의 크레딧을 채우지 못한 사람이라도 배우자 연금의 최대 50%까지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단, 이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부부가 1년 이상 혼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야 하며, 둘 중 한 명은 반드시 소셜시큐리티 연금 수령 자격(40 크레딧)을 충족하고 있어야 한다. 둘째, 배우자 연금을 신청하는 시점에서 최소 62세 이상이어야 한다. 다만 62세에 조기 신청을 하면 최대 50%보다 감액된 금액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남편이 정년(Full Retirement Age)에 월 2000달러의 연금을 받는다면, 아내는 정년에 신청했을 경우 월 1000달러를 받을 수 있지만, 62세에 신청하면 약 700~750달러 정도만 받게 되는 식이다.
셋째, 배우자 연금은 본인이 소셜시큐리티 연금을 독자적으로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경우에도 신청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자신의 연금액과 배우자 연금의 절반을 비교하여 더 많은 금액을 선택적으로 수령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배우자’ 씨가 파트타임으로 일한 적이 있어 월 600달러의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고, 남편의 연금이 2000달러라면 절반인 1000달러와 비교하여 더 높은 1000달러를 선택할 수 있다. 단, 둘을 더해 1600달러를 받는 식은 안 된다. 더 높은 쪽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넷째, 실제 연금 수령을 위해서는 주 수혜자(예: 남편)가 먼저 연금을 신청해야 한다. 과거에는 배우자가 연금을 신청하지 않아도 배우자 연금만 먼저 신청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주 수혜자의 연금이 시작되어야만 배우자 연금도 신청할 수 있다.
한 가지 더 중요한 점은 배우자 연금은 본인의 근로 이력과 무관하게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합법적 거주자로서 사회보장번호(SSN)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 제도에 접근할 수 있다. 많은 분들이 “나는 일한 적이 없으니 아무 혜택도 없겠지” 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생각은 버려도 된다. 남편이나 아내가 오랜 기간 성실히 일하며 세금을 낸 기록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부부의 공동 자산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또한 만약 배우자가 사망한 경우, 생존 배우자는 배우자가 생전에 받던 연금의 최대 100%까지 받을 수 있다. 이를 ‘생존 배우자 혜택(Survivor Benefit)’이라 한다. 단, 수령 시기에 따라 역시 감액 또는 조정이 될 수 있으므로 전문가와 상담 후 신청 시기를 조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리하자면, 소셜시큐리티 제도는 단지 일한 사람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 배우자도 함께 고려된 포괄적인 제도다. 특히 부부 중 한 명이 생계를 책임지고, 다른 한 명이 가정을 책임졌다면, 그것 역시 공동의 노동이자 기여로 인정받는 셈이다. ‘배려남’ 씨처럼 묵묵히 일한 남편도, ‘배우자’ 씨처럼 묵묵히 가정을 지킨 아내도, 함께한 세월만큼 나이 들어 받을 수 있는 혜택도 공평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배우자 연금은 미국에서 살며 쌓아온 부부의 삶을 위한 또 하나의 선물이다. 이제는 혼자 일했다는 생각보다, 함께 살았다는 의미를 되새기며 소셜시큐리티 혜택을 점검해 보길 권한다. 나이 들수록 가장 든든한 것은 바로, 함께 걸어온 시간에서 비롯되는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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