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면서 문득 떠올리는 ‘죽비(竹篦)같은 책’이 하나 있다. 일본의 작가 소노 아야코의 ‘늙음을 경계하는 글’이라는 의미의 <계로록(戒老錄))>이다.
이 책은 작가가 시부모님 두 분과 친정어머니 이렇게 세 명의 노인과 함께 살면서 평소 기록해온 글을 모아 40세 때 처음 펴낸 에세이로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에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후 51세와 65세 때 수정·가필하여 출간될 정도로 세대가 바뀌어도 공감할 수 있는 인생에 대한 근본적인 고뇌를 담고 있어 꾸준히 읽히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한 마디로 쿨(cool)한 노인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책이다. 필자도 30대 때 처음 이 책을 읽고 크게 공감하여 나중에 나도 이렇게 늙어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작가는 노년에 접어든 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노년이라는 것은 지위도 자격도 아니다/나이가 들면 젊었을 때보다 자신에게 더욱 더 엄격해져야 한다/남이 주는 것, 해주는 것에 대한 기대를 버린다/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귀찮아도 많이 걷고, 게으르지 않아야 한다/노인들은 몸가짐과 차림새를 단정히 해야 한다/혼자 즐기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늙어가는 과정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죽는 날까지 활동할 수 있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다. 그래서 나는 학습하면서 죽기로 했다/노인들은 어떤 일에도 감사의 표현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감사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인생이란 없다/재미있는 인생을 보내었으므로 나는 언제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할 정도로 늘 심리적 결재를 해둔다.”
이 중에 내 삶에 적용하는 항목은 과연 몇 개나 될까? 노인도 나잇값을 해야 대접받는 세상이다. ‘나잇값’과 ‘꼴값’은 비아냥조가 짙은 낱말이다. 그래서 ‘나잇값을 못한다’며 손가락질을 하든가 ‘꼴값 떨고 있네’라며 야유도 한다. ‘꼴’이란 단어에는 원래 ‘속되다’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으니 ‘꼴값’이 좀 놀림을 당하더라도 억울할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나이에 무슨 죄가 있다고 꽁무니에 ‘값’이란 꼬리표까지 매달아 이러쿵저러쿵한단 말인가. 나잇값이란 단어를 설령 좋은 의미로 사용해도 적극적 칭찬은 못 된다.
‘나잇값 하네’라는 말은 적극적 표현이기보다는 ‘제법’ 또는 ‘뜻밖에’라는 조건적 소극적 겉치레 칭찬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청춘이니까 아픈 것이 당연하고 중년이니까 아파도 울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노인이니까 아픈 내색도 못하고 신음소리를 뼛속 깊이 갈무리하고 몸살이나 앓다가 때에 이르면 말없이 떠나야 하나. 청춘 나잇값은 금값이고, 중년 나잇값은 은값이고, 노년 나잇값은 동값도 아니고 똥값이란 말인가.
“아름답게 나이 들게 하소서 /수 많은 멋진 것들이 그러하듯이/레이스와, 상아와, 황금, 그리고 비단도/꼭 새 것만이 좋은 건 아니랍니다/오래된 나무에 치유력이 있고,/오래된 거리에 영화(榮華)가 깃들듯;/이들처럼 저도 나이 들수록 /더욱 아름다워질 수 없나요.”
미국의 여류시인 칼윌슨 베이커의 ‘아름답게 나이들게 하소서’다. 이 말은 모든 노인의 바람을 담고 있다. 누구나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고 싶다. 젊은 시절 땀 흘려 일하고 노년에는 편안한 삶을 누리고 싶다. 생계를 위해, 먹고살기 위해 일하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 일이 어느 정도 있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의 일’로 충분한 노동이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늙는다는 말보다는 나이든다는 말이 훨씬 부드럽고 표나지 않아 좋다. ‘너는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라고 결연한 선언을 한다. 노인이었던 사람은 없다. 누구나 처음 늙고 지금의 나이도 처음 겪는다. 거울 앞에서 조용히 ‘나도 늙는구나’ 하고 혼자 한탄한다고 별 수 있겠어. 세월이 가고 늙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지만, 그래도 염치없이 좀 더 성장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삶의 길이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길이가 아니라 가치다. 아름다움이 없는 장수는 축복이 아니다. 장수해도 필수요건은 ‘어른다움’이다. 나는 이런 노인이 되고 싶다. 넉넉하고 윤택하지 않아도 삶이 그윽하고 만족스러워 무엇을 먹어도 무엇을 입어도 어디에 살아도 즐겁게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고마워하며 살 수 있는 분. 언제 삶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하면서 자신의 주변을 흐트러지지 않게 정리하시는 분. 자기를 애써 돋보이려고 하는 것은 실은 자기 확신이 없고 속이 텅 빈 모습이라는 사실도 보고, 늙음을 초조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추하고 딱한 모습인가 하는 것도 보시는 분. 나는 이러한 노인을 만나면 그런 노인이 되고 싶다.
은발의 한 노인이 벤치에 앉아있다.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고 있다. 중후한 기품이 풍긴다. 영화의 한 장면이다. 멋스럽다. 마지막 남은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겁니다”라고 가수 노사연은 노래했다. 과일과 술은 익을수록 향도 진해진다. 인생도 산전수전 다 겪어야 인생의 참맛을 안다. 옛말에 ‘꽃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 술의 향기는 천리를 가지만,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가고도 남는다’라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햇빛은 아침에 돋아 오르는 당당한 모습도 아름답고, 한낮 자신만만하게 내려쬐는 햇살도 아름답고, 저녁에 지는 황혼의 빛은 더욱 아름답다.
사도 바울처럼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고 고백할 수 있는 노년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