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의 서류비미자(또는 불법체류자) 단속이 벌써 반년째 접어들고 있다. 이민자 단속 명분의 하나는 “불법체류자들이 세금은 내지 않고 국가의 혜택만 받아서, 미국민의 세금을 낭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상당부분 사실이 아니다.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소셜시큐리티 등 미국정부의 사회복지 프로그램은 시민권자 및 영주권자만 받을 수 있다. 그 이외의 이민자들은 소셜시큐리티와 메디케어 세금은 꼬박꼬박 내면서 혜택을 받기 어렵다. 사회보장번호(SSN)나 노동허가증이 없는 서류미비자는 아예 정부 혜택 신청도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서류미비자의 상당수도 세금을 낸다. 물건을 사거나 소비할 때 내는 ‘세일즈 택스’는 물론이고, 상당수 서류미비자는 매년 택스 리턴을 통해 국세청(IRS)에 세금을 성실히 납부한다. 사회보장번호(SSN) 대신 개인납세자식별번호(ITIN)를 이용해서다. 비록 미국 이민 신분에 문제가 있찌만 법적인 납세의 의무를 다하고, 혹시라도 있을 이민자 구제책 시행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IRS도 서류미비자의 ITIN을 통해 택스 리턴을 적극 권장해왔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22년 약 380만 건의 ITIN 세금 신고가 이루어졌으며, 서류미비 이민자들은 연방, 주, 지방세를 합쳐 967억 달러 이상의 세금을 납부했다.
그러나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는 서류미비자들의 개인정보가 그들을 추방하는 도구로 변질될 위기에 처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사회보장번호(SSN) 대신 개인납세자식별번호(ITIN)를 사용하는 이민자들의 세금 신고 데이터를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제공해 추방 작전에 활용하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러한 시도는 커다란 법적 문제가 있다. “모든 서류미비 이민자를 ‘범죄자’로 규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서류미비 이민자들의 범죄율은 미국 시민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FBI와 법무부 데이터는 이민이 증가할수록 전국 범죄율이 오히려 감소함을 보여준다. 또한 미국 법적으로 볼 때 많은 서류미비 이민자의 입국과 거주는 명시적으로 ‘범죄’가 아니며, 벌금 또는 행정 처분을 받는 ‘행정적 위반’에 불과하다. 게다가
ITIN을 사용하는 모든 이가 서류미비 이민자는 아니다. SSN을 신청했으나 아직 받지 못한 합법적 이민 노동자들도 ITIN을 사용한다.
이민국이 ITIN 납세자의 정보에 접근한다면 세 가지 심각한 영향이 예상된다. 첫째, ‘기소 재량권’의 원칙이 훼손된다. 진정한 범죄자 체포보다 무차별적인 단속으로 법 집행의 효율성이 저하된다. 둘째, 세금 납부를 장려하기 위한 ITIN 제도가 오히려 세금 납부를 억제하는 역효과를 낳을 것이다. 예일 예산연구소는 2026 회계연도에 250억 달러의 소득세 수입 감소를 예상한다. 셋째, 이민자 가정의 개인정보 보호를 침해함으로써 이미 위태로운 연방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가 더욱 추락할 것이다.
ITIN납세자 정보 공개는 단순히 서류미비 이민자들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모든 시민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도전이다. 세금 납부라는 시민적 의무를 다하는 이들의 정보가 그들을 추방하는 무기로 변질되고 있다. 결국 법치주의와 개인정보 보호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
IRS는 역사적으로 납세자의 개인정보 보호에 엄격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재무장관이 70만 명의 ITIN 납세자 데이터를 국토안보부(DHS)와 공유하도록 승인했을 때, IRS 대행 국장과 개인정보보호 책임자는 이를 거부하고 즉각 사임한 바 있다.
세금 정보의 비밀보장은 단지 이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정보 보호법의 예외를 악용하는 이러한 시도는 모든 미국인의 자유와 권리를 위협하는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 이번에 ITIN 납세자 정보가 공개되면, 다음번에는 영주권자의 SSN정보가 공개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한인사회에도 이민신분 때문에 고통받거나, 이민신분이 없는 한인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의 상당수는 ‘납세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서류미비 한인들의 위기는 남의 일이 아니며, 한인사회도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