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불법 체류자의 재판 받을 권리를 박탈하고 즉시 구금 및 추방할 수 있는 조치를 단행했다. 법원에서 불법 체류자의 보석을 심리하던 절차를 없애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15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토드 라이언스 미 이민세관단속국(ICE) 국장 대행이 지난 8일 발표한 이같은 내용의 메모를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메모에 따르면 앞으로 이민자들은 추방 절차 중 보석 심리를 받을 권한이 박탈된다. 기존에는 불법으로 미국에 도착한 이민자여도 당국의 추방 절차에 맞서 법원에서 보석 심리를 받으며 체류할 수 있었고 그 중 다수가 석방됐다. ICE의 지난해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까지 약 760만명이 추방 절차와 보석 심리가 진행되는 중에 석방됐다.
하지만 앞으로는 정식으로 허가를 받지 않은 이민자는 원칙적으로 추방 절차 기간 동안 구금될 전망이다. 구금 기간은 짧게는 수 개월에서 길게는 수 년이 될 수 있다. 이를 두고 “재판받을 권리를 박탈했으므로 사실상 구금은 추방으로 가는 수순”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민자들이 가석방되는 일부 예외적인 사례가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그조차도 앞으로는 법원이 아닌 ICE에서 결정한다. 미 이민변호사협회(AILA)에 따르면 이미 뉴욕, 버지니아 등 12개 주 이민 법원에서 이민자들의 보석 심리가 중단됐다.
그간 이민법 적용을 거의 받지 않았던 장기 체류자들이 구금 및 추방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지금까지는 국경을 넘은 지 얼마 안 된 이민자들이 이민법의 주 타깃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장기 체류자라도 정식으로 허가를 받지 않았다면 이민법의 적용을 받게 됐다. 이미 지난 상반기부터 이같은 방식으로 추방된 장기 체류자들이 있다고 WP가 전했다. 그렉 첸 미국이민위원회(AIC) 정부 관계 담당 수석 이사는 “개별 상황에 대한 실질적인 검토 없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구금하기 위한 조치”라고 짚었다.
최근 미 의회에서는 향후 4년간 약 450억 달러(약 62조원)를 ICE의 이민자 구금 수용 능력 확충에 투입하는 예산안도 통과됐다. WP는 “이를 통해 현재 하루 약에서 5만 6000명이었던 수용 인원을 2배가량인 10만명까지 확대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이민자들의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조치”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민자를 대리하는 애런 코르투이스 변호사는 “이미 존재하는 구금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정도”라며 “이번 조치는 명백한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하수영 기자 ha.su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