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관에서 가끔 만나는 한국 분을 탈의실에서 만나 인사를 나눴다. 전에 추운 겨울날 체육관 앞에서 내 차가 시동이 안걸렸을 때 자진해서 케이블로 자신의 차에 연결해 도와준 친절한 분이다. 고마워서 점심을 사겠다고 해도 사양했다. 그분은 우체국에서 40년 넘게 일하고, 작년 70세에 은퇴했다고 했다.
은퇴 연금을 받으며 사는 이야기가 나왔다. 401K 이야기도 나왔다. 401K에 관한 신통한 내 경험을 이야기했다. 나는 은퇴한 지 10년도 넘었다. 연금을 받아 생활한다. 그런데 매달 500달러가 따로 나왔다. 이 돈이 어디서 나오나 알아보니 그것은 내가 일할 때 세금을 내기 전의 내 월급에서 얼마를 떼어내 저축기관에 냈고, 내 고용기관에서 내가 낸 만큼의 돈을 매치해서 은퇴하고 돈을 더 받도록 장려했던 401K였다.
놀라운 것은, 매달 500달러씩 10년 넘게 받아오는데도 401K 원금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늘어나는 것이었다. 와! 원금을 가진 회사가 투자해서 돈을 늘리는구나! 그제서야 이해가 갔다. 그런 사실을 일할 때 미리 알고 401K에 10배로 투자했더라면, 지금 받는 500달러의 10배인 5000달러를 받을 수도 있었을 것 아닌가. 그러면서도 원금이 늘어난다면, 이것처럼 좋은 은퇴 저축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늦게야 하게 됐다.
우체국에서 40년 넘게 일하신 분은 은퇴 연금을 받고, 401K를 포함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젊어서 저축한 원금에서 ‘미니멈 디스트리뷰션’이라는 이름으로 매달 돌려주는 돈이 은퇴 연금 액수보다 더 많이 나온다고 했다. 원금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핸드폰 앱을 열고 보여주었다. 원금이 백만이 아니고, 몇백만 불이었다. 와,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신통했다. 내가 내 401K 내역을 보고 젊어서 시작해서 10배 투자했더라면 5000달러를 받을 것이 아닌가 상상했는데, 이분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원금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원금을 마련했어요?” 내가 물었다. 그는 우체국에서 일을 시작할 초기부터 저축을 했다고 한다. 401(K), 403(b), 457(b) 같은 프로그램을 어떻게 알게 되었냐고 물으니, 그는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온 시절과 그때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이웃 청년의 도움을 이야기했다. 이민 초기의 가난 속에서 은퇴 후의 경제적인 안정과 교육을 통한 자녀들의 번영을 위해 꾸준하게 일하고 저축한 결과라고 한다. 자녀들도 명문 대학에서 교육받아 잘되고, 자신도 은퇴 후에 경제적인 기반을 만들어 놓았다고 했다. 그것은 미국으로 이민 온 우리 모두의 소망이다. 그분은 그 소망을 뚜렷하게 이뤘다. 평범한 그분이 어떤 백만장자보다도 존경스러워 보였다.
월요 등산팀과 공원을 걸으며 ‘평범한 백만장자’ 이야기를 하니 옆에서 걷던 분도 자신이 아는 백만장자 이야기를 꺼냈다. 이분은 미국에 와서 군에서 은퇴한 분인데, 동료 중 한 분이 그 옛날 하사관 시절 샌프란시스코에 집을 사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 육군 하사관으로 제대한 후에 샌프란시스코에 저택이 3채나 있는 백만장자가 되었다고 한다. 육군 하사관 월급을 받아서 백만장자가 된 분이 역사상 몇 분이나 될까. 한국 분들, 참 대단하고 별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에 5000달러 연금을 받으면, 그것도 백만달러 부자나 같아요. 백만달러를 투자하면 평생 매달 그렇게 받는데요.” 한 사람이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들 중에 백만장자가 적지 않겠네.” 그러면서 주위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우리들 중에 분명하게 보이는 건물 소유주들 중에도 백만장자들이 꽤 있었다. 누군가 ‘백만장자 이발사’ 유튜브를 보여주었다. 조지아 흑인 지역에서 이발소를 차려 백만장자가 된 사람이 쓴 책 이야기였다.
“백만장자면 뭐해. 병들면 고생하고, 죽으면 그만이지. 건강이 제일이야!”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백만 장자들이라고 약하지 않다. 그들이 죽고 난 후에도 후손 중에는 유산을 받아 잘 사는 가정도 있고, 남은 유산으로 사회에 필요한 곳을 돕는 분도 있다.
우체국에서 40년 이상을 꾸준히 일하며 백만장자가 된 그분이 존경스럽다. 남에게 도움을 받기보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도우며 사는 모습도 존경스럽다. 자녀들이 가진 재능을 살려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돕고, 그들이 사회에 필요한 인물로 자라도록 한 그가 존경스럽다. 은퇴 후의 경제적 안정을 위해 허황한 꿈을 쫓기보다 자신의 자리에서 꾸준히 노력한 결과를 얻은 모습이 좋은 본보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