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부 최고 명소 90년 명성
“어떻게 이런 곳이” 감탄 절로
인근 루비폭포도 들러 볼 만
#. 지난해 봄 잘 아는 후배가 애틀랜타로 출장을 왔었다.
주말에 어디 구경 가볼 만한 곳 추천 좀 해 달라 했다. “글쎄, 어디가 좋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내가 처음 조지아 왔을 때 여러 사람으로부터 들었던 그대로 전달했다. “한나절 가볍게 구경하려면 스톤마운틴, 하루 나들이로 가려면 락시티만한 곳이 없지.”
그 이후로도 한국서, 혹은 타주서 손님이 올 때마다 비슷한 질문을 받고 그럴 때마다 똑같이 대답했다. 스톤마운틴은 거의 애틀랜타의 상징 같은 장소니까 그렇다 치고, 락시티는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조지아 한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추천하는 명소가 됐을까.
락시티는 조지아와 테네시 접경에 있는 룩아웃마운틴 산자락에 있다. 애틀랜타에선 차로 2시간 남짓 거리다. 룩아웃마운틴은 채터누가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우뚝한 산이자 고급 주택지다.
가장 높은 곳은 해발 2389피트(728m). 체로키 원주민들은 이 산을 ‘솟아오른 바위’라는 뜻의 채터누가라 불렀다. 지금 채터누가는 테네시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강변 도시 이름이 됐다. 내슈빌, 멤피스, 녹스빌에 이은 테네시주 4번째 도시다.
락시티의 정식 명칭은 락시티가든(Rock City Gardens)이다.
테네시주 채터누가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주소는 조지아다. 구글 지도를 켜고 찾아가면 조지아에서 테네시로, 또 조지아로 넘나들 때마다 ‘웰컴 투 조지아’라는 인사가 나온다.
락시티는 국립공원도 아니고 주립공원도 아니다. 20세기 초 가넷 카터 부부의 땀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인공 정원이다. 룩아웃마운틴 정상보다는 조금 아래인 해발 1700피트(518m)에 있다. 90년 전인 1932년에 일반에 개장됐다.
락시티가든 입구 매표소와 안내지도. 한글판도 있다.
락시티가 조지아를 비롯한 미국 동남부의 대표적 관광 명소가 된 것은 이유가 있다.
첫째, 한 자리에서 7개 주를 다 볼 수 있는 기막힌 전망 때문이다. 둘째, 이런 산꼭대기에 어떻게 저런 폭포가 있나 싶을 정도로 기묘한 절벽 폭포도 유명세를 더했다. 셋째, 진기한 나무와 돌, 동굴, 조각 작품 등 정성들여 모으고 가꾼 구경거리가 가득하다는 점이다.
가든 안에는 400여종의 식물들이 있다. 코리안 스파이스 바비브넘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는 분꽃나무.
락시티 내부를 도는 오솔길(Enchanted Trail)은 0.5마일이 채 못 된다. 하지만 바위틈 사이사이로 다양한 꽃도 보고 나무도 보고, 이런저런 조각상까지 살펴가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바위 사이로 곡예처럼 지나가야 하는 바늘 눈(Needle’s Eye), 날씬한 사람만 지날 수 있는 뚱보 쥐어짜기(Fat Man’s Squeeze), 아찔한 바위 계곡 위로 놓인 180피트 길이의 출렁다리 건너기도 특별한 즐거움이다.
뚱보 쥐어짜기 바위. 바위 틈새로 날씬한 사람만 겨우 지나갈 수 있다.
바위 계곡 양쪽을 연결하는 출렁다리 위로 사람들이 건너가고 있다.
압권은 절벽 위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다. 약 100피트(30m) 높이의 절벽 위 폭포는 하늘에서 물이 쏟아지는 것 같다.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천공(天空)의 성(城) 라퓨타’ 같은 공상과학 만화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분위기다.
락시티의 최고 경치를 자랑하는 절벽 폭포. 폭포 위에 ‘연인의 도약’이라는 아찔한 낭떠러지와 7개 주 전망대가 있다.
계곡 산책이 끝날 무렵에 만나는 동화나라 동굴(Fairyland Caverns)은 20세기 동심의 세계다. 유럽 전래동화에 심취했던 카터 부인이 독일 등 유럽 여러 나라를 다니며 동화 속 주인공 인형을 일일이 모으고 수입해 온 것들로 동굴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모두 100년 전 옛날 동화의 주인공들이라 빠르고 세련된 신종 캐릭터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의 동심에 얼마나 가 닿을지는 살짝 의문이다. 대신 어릴 때 보고 들었던 동화 속 주인공들을 만나서 그런지 나이 든 사람들은 다들 좋아하는 것 같았다.
동화나라 동굴 내부. 한인들이 많이 찾아서인지 한글 안내지도가 눈길을 끈다.
#. 락시티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182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백인 선교사들이 원주민 선교를 위해 이곳에 왔다가 큰 바위 군락을 발견하고 바위 요새(Citadel of rocks)라는 기록을 남겼다.
남북전쟁 때의 기록도 있다. 동남부 주요 산들이 대개 그랬듯 룩아웃마운틴도 남군과 북군의 요란한 격전지였다. 그때 양측 병사들은 모두 락시티가 동남부 7개주를 볼 수 있는 자리라고 보고했다. 이후 락시티의 7개주 조망은 기정사실로 굳어졌고 누구나 그렇게 믿었다. 그 절벽 위에는 지금 ‘연인의 도약(Lover’s Leap)’이라는 이름이 붙어있고 바로 옆엔 7개 주까지의 거리를 표시한 이정표가 만들어져 있다.
락시티 전망대 이정표. 7개 주까지의 거리가 표시돼 있다.
‘연인의 도약’에는 전설도 전한다. 들어보니 얼마 전 소개했던 요나마운틴 절벽 전설의 복사판이다.
앙숙 관계였던 두 인디언 부족 청춘남녀가 사랑에 빠졌지만, 남자가 한 부족에게 잡혀 이곳에서 죽임을 당하자, 여자도 따라 절벽에서 몸을 던졌다는 바로 그 전설이다. 이와 비슷한 전설은 이곳 말고도 전국 절벽 수십 곳에 퍼져 있다고 한다. 지금처럼 카톡 퍼나르기 한 것도 아닐 텐데 정말 우리 속담처럼 발 없는 말이 천 리, 만리를 가긴 갔는가 보다.
락시티 방문자 열에 아홉은 ‘연인의 도약’ 절벽 위에서, 또 7개 주 이정표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7개 주는 조지아, 테네시, 사우스캐롤라이나, 노스캐롤라이나, 앨라배마, 버지니아, 켄터키주를 말한다. 나도 갈 때마다 사진을 찍었지만 저 멀리 아득히 보이는 곳이 정말 7개 주 땅일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니 그렇겠거니 했다.
나와 달리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던 모양이다. 2007년 누군가가 테네시대학에 사실 여부 확인을 의뢰를 했다. 돌아온 대답은 아리송했다. “지금처럼 대기 오염이 심하지 않았을 때의 기록이니까 7개 주가 보인다는 말은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7개 주가 보이고 안 보이고 가 뭐가 그리 중요한가요?”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은 누구나 하는 일이다. 보지 않고도 믿는 것이 진짜 믿음이라 했다. 락시티에 관한 한 나는 후자 쪽을 따르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도 이곳을 소개할 때는 꼭 이렇게 덧붙인다.
“락시티는 7개 주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입니다. 조지아 왔으면 한 번은 가봐야죠.”
# 메모: 입장료(어른 기준)는 주중 24.95달러, 주말엔 27.95달러. 시간대별로 입장 인원이 제한되기 때문에 사전 온라인 예약을 권장한다. 락시티가든 주소는 1400 Patten Road, Lookout Mountain, GA 30750이다. 문의 및 예약 웹사이트 : www.seerockcity.com
룩아웃마운틴의 또 다른 명소 루비폭포(1720 Scenic Hwy, Chattanooga, TN 37409)도 들러볼 만하다. 1120피트 지하에 있는 동굴 속 폭포로 유명하다. 락시티에선 3마일 거리다.
루비폭포 입구. 락시티와 함께 룩아웃마운틴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다.
루비폭포는 1120피트 땅속에 있는 동굴 속 폭포다.
글·사진=이종호 애틀랜타중앙일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