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상상의 동물 드래곤을 좋아하는 3살 손주와 함께 인도네시아의 코모도 섬에 사는 ‘코모도 드래곤’ 다큐를 보고 우리는 애틀랜타 동물원을 찾아갔었다. 전에 여러번 동물원을 찾았던 아이는 빠르게 걸어가서 나무 둥치에 상반부를 올린 대형 도마뱀을 사랑스럽게 바라봤다. ‘드래곤’ 이라는 이름은 신비의 능력을 가진 동물이라 나이에 상관없이 사람들은 매혹된다. 동물원 좁은 우리 속에서 무심하게 한곳을 주시하던 대형 도마뱀이 처연해서 코모도 섬의 천연환경에 돌려보내 주고 싶다고 했더니 아이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일본계 장인을 배려한 사위가 앞장서서 애틀랜타 중심가에 있는 하이 미술관 (High Museum of Art)을 찾아가서 사무라이 특별전을 봤다. 전에 워싱턴DC에 있는 프리어 미술관,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미술관 등에서 사무라이 특별전을 봤었지만 이번처럼 강한 인상을 받지 않았다. 2층 사무라이 특별전 입구를 꽉 채운 사무라이 관련 영상들과 화보들을 보면서 어쩐지 영화제의 광고판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들어선 전시실에서 12세기에서 19세기에 걸친 150 품목이 넘는 상큼하고 정교한 디자인의 헬멧과 칼, 거의 20 완벽한 사무라이 전투복에 심지어 무사들이 타던 말의 가면까지 자세한 소개와 함께 전시되어서 일본 사무라이 문화의 정수와 일본인들의 영혼을 소개했다. 명철하고 용감하며 도덕심이 강한 사무라이는 일본인들이 고귀하다고 믿는 용감함, 겸손함, 명예, 충성, 그리고 이타심을 모두 갖추었다.
사무라이의 이미지는 어쩌면 과거 혼탁했던 일본의 역사적인 변천을 칼부림으로 휘몰았던 파벌싸움의 복합적인 흔적이다. 사무라이들은 중국의 병법서인 ‘손자’에서 따온 ‘풍림화산’, 바람같이 빠르게, 숲처럼 고요하게, 불길처럼 맹렬하게, 그리고 산처럼 묵직한 투쟁의 삶을 산 강력한 세력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그들은 강한 용기와 도덕성을 갖춘 불굴의 귀감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그들의 칼은 무사의 일부로 명예로운 물건이다. 우습지만 나의 남편도 반세기 훨씬 전에 일본도 2개를 수집해서 보관한다. 응접실 한쪽 귀퉁이에 버티고 있던 칼을 무기에 관심가진 6살 큰 손주가 작년에 눈 여겨 봤다. 올해는 칼을 만져보고 싶다는 손주가 여름에 앨라배마로 오기 전에 나는 옷장 깊숙한 곳에 꽁꽁 숨겼다.
전시장을 돌며 한일관계의 미묘한 동요를 벗어나서 다양한 사무라이 문화의 소개를 재미나게 보고 나서다가 출구 쪽의 벽에 있던 글귀를 읽고 주춤했다. 내가 일본의 사무라이 특별전을 너무 즐겼나? 하는 죄책감이 순간 나를 놀라게 해서 작은 신음을 냈다. 옆에 있던 사위가 나를 봤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오랫동안 피바람을 몰아왔던 파벌들을 정복하고 일본을 통일시킨, 일본인들의 영웅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내 어린시절에 한국 역사의 적으로 뇌리에 새겨진 이름이다. 그는 뛰어난 전략가로 일본을 통일시킨 후 조선을 침략해서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그것이 대륙으로 세력을 확보하려던 것이었던지 아니면 갑자기 전투를 멈춘 무사들에게 싸울 빌미를 준 것인지 모르지만 나는 그를 곱게 봐주지 못한다.
“I came like the dew
I vanish like the dew
Such is my life – Toyotomi Hideyoshi (1536-1598)
“이슬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사라지는 것이 나의 삶” 마치 일본의 짧은 시 하이쿠를 읽는 기분이 들었다. 사무라이들이 고전과 시, 그림과 정원 디자인, 그리고 다도에 능숙하다고 하더니 이 글에서 그의 새로운 면모를 봤다. 조선을 침략하고 기독교인들을 탄압한 과대망상증 환자였던 그는 무조건 나쁜 사람이라고 믿었던 내 오랜 고집이 한풀 꺾였다. 그때 우리집 벽에 걸려있는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그림이 떠올랐다.
전설적인 동물 드래곤의 이름을 가진 대형 도마뱀을 보고 또한 1869년에 공식적으로 해체된 사무라이의 흔적을 본 후에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조금 흔들렸다. 세상의 모든 존재에 눈을 떠는 어린아이들이 열광하는 드래곤의 실체와 일본인들의 자부심인 용감한 전사 사무라이 전설이 세계인들을 유혹하는 현실에 직면하니 존재의 의미에 대한 나의 관점이 조금 변한다. 덧붙여 애틀랜타의 수족관이나 동물원, 미술관 등의 명소가 매력적인 것은 나같은 퇴역군인은 입장이 무료이다. 그러니 바람부는 대로, 기분 내키는 대로 찾아가 맘껏 즐겨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