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은 매력이다. 정치에서도 젊음은 큰 무기다. 젊은 이미지는 정치인의 가장 큰 덕목인 경륜보다 대중에게 더 큰 호소력을 갖는다. 미디어가 발달한 요즘은 더욱 그렇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 1960년 처음 도입된 케네디 상원의원(민주당)과 닉슨 부통령(공화당)의 대선후보 TV토론은 정책과 경륜보다 후보의 이미지가 토론의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TV 화면에 비친 케네디의 젊고 잘생긴 외모와 활기찬 이미지는 시청자의 호감을 샀다. 반면 닉슨은 케네디보다 상대적으로 처지는 외모에 땀까지 흘려 대조됐다.
최근 조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직을 사퇴한 것도 마찬가지다. 바이든이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정책이나 경륜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81세라는 그의 나이와 노쇠한 이미지가 사퇴의 결정적 요인이 됐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TV토론 이전까지만 해도 양자의 지지율은 오차 범위 내였다. 트럼프는 강한 미국, 불법 이민 근절,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 등을 내세우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란 구호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백인 블루칼라의 지지를 받았다. 반면 바이든은 동맹 중시, 미국의 국제신뢰회복, 경제성장, 낮은 실업률, 대규모 해외투자 유치, 일자리 창출 등 긍정적 요인과 현직 대통령의 이점을 살려 선거를 접전 양상으로 몰고 갔다.
그러나 둘 다 약점을 안고 있었다. 바이든은 나이가 많아 노쇠한 데다 밥상 물가 폭등, 우크라이나 지원 장기화에 따른 염증, 중동사태 악화, 불법 이민자 증가 등으로 비판을 받고 있었다. 트럼프는 막말, 인종 차별, 돌출 행동, 동맹국과의 갈등, 지나친 반 이민정책으로 혐오 층도 많았다. 게다가 ‘성 추문 입막음 혐의’ 재판의 유죄평결, 의사당 난입 배후조종 혐의, 기밀문서 유출 등 사법 리스크까지 안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접전 양상은 TV토론과 트럼프 피습 사건이 일어나면서 급변했다. 지난 6월27 벌어진 첫 TV토론에서 바이든은 멍하니 상대를 쳐다보는가 하면 버벅거리고, 초췌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유권자들이 그동안 그의 대통령직 수행에 대해 가졌던 의구심을 확인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를 지지하던 사람들조차 바이든이 나오면 “너무 늙었어” 하며 혀를 끌끌 찼다. 토론 내용이나 정책이 아니라 바이든의 나이와 늙은 이미지가 토론의 승패를 갈랐다.
이어 벌어진 트럼프 피습(7월13일) 사건은 트럼프 승세에 쐐기를 박는 꼴이 됐다. 그는 유세 중 총알이 귀를 스쳐 지나가는 암살시도로 자칫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피를 흘리면서도 멀쩡하다는 듯 주먹을 치켜드는 퍼포먼스로 건재함을 과시, 강한 인상을 전 미국 유권자에게 심어줬다. 이는 늙고 무기력한 이미지의 바이든과 크게 대조됐다.
공화당은 ‘노쇠한 바이든이 82세에 새 임기를 시작, 어떻게 4년간 더 국정을 이끌겠는가’라며 대대적인 선전 공세를 폈다. 언론도 바이든의 패배가 확실하다는 여론조사를 보도했다. 결국 바이든은 7월21일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천거하며 물러났다. 패색이 짙었다지만 바이든은 자존심과 아집을 버렸다. 그는 신사이자 대인이었다.
트럼프로 기울었던 미국 대통령 선거는 다시 시계 제로 상황이 됐다. 트럼프 승리를 담보했던 나이 문제가 거꾸로 됐기 때문이다.
해리스 부통령은 59세로 트럼프보다 무려 19년이나 젊다. 인도계와 흑인 피가 섞인 그는 활기찬 미소와 함께 젊음을 무기로 트럼프란 노인을 공략하고 있다. 이제 해리스 옆에 선 트럼프는 늙은 노인이다. 바이든을 물러나게 한 나이가 트럼프에게 부메랑이 된 것이다.
늙었다는 이유로 바이든에게 등을 돌렸던 사람들이 젊은 해리스 쪽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해리스 지지율이 트럼프보다 높게 나오는 여론조사도 발표되고 있다. “그러게 왜 바이든을 사퇴라는 막다른 골목까지 몰아붙였느냐”는 농담까지 나오고 있다. 인생유전이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인간사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