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미국인 교황인 레오 14세가 16일 바티칸 주재 외교단을 상대로 한 첫 연설에서 이민자에 대한 존중을 촉구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충돌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교황청에 따르면 그는 이날 바티칸에서 각국 주교황청 대사들에게 “저 자신도 이민자의 후손이자 직접 이민을 선택한 사람”이라며 인간의 존엄성은 어느 곳에 살든 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태아부터 노인까지, 병든 이부터 실직자까지, 시민이든 이민자든 상관없이 누구든 모든 이의 존엄성을 보장하려는 노력에서 제외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미국 시카고 태생인 그는 지난 8일 전 세계 14억명의 신자를 이끄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새 수장으로 선출됐다. 선출 전에는 20년간 페루에서 선교사로 활동했고 페루 시민권도 가지고 있다.
레오 14세 교황의 이번 발언은 출신국인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의 향후 관계 정립에서 중요한 신호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도 강경한 이민 정책을 추진했고, 지난달 선종한 프란치스코 전 교황은 재임 중 이민 문제를 놓고 트럼프 대통령과 갈등을 겪었다. 프란치스코 전 교황은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대선에 도전 중일 때 “다리를 만들지 않고 벽만 세우려고 하는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레오 14세 교황도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월엔 J.D. 밴스 부통령이 초기 가톨릭 신학 개념을 인용하며 “가톨릭 교리는 다른 사람을 돕기 전에 자기 가족을 우선시하라고 한다”고 주장하자 “그 해석은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밴스 부통령은 오는 18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되는 레오 14세 교황 즉위 미사에 미국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할 예정이다.
레오 14세 교황은 이날 연설에서 평화, 정의, 종교의 자유 등을 핵심 주제로 삼았다. 그는 무기 거래 중단을 촉구하고 다자 외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임 교황들처럼 전 세계를 방문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아울러 레오 14세 교황은 이 자리에서 낙태 반대 입장을 재확인했고, 종교의 자유를 보호하고 종교 간 대화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진실을 말해야 할 때, 세계의 권력자들에게도 주저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