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오래된 스크랩북을 정리하다가 내 환갑 때 아내로부터 받은 편지 한 장을 발견했다. 누렇게 빛바랜 편지는 우리의 첫만남의 추억으로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30년 전 8월의 어느 무더운 날 이었지요. 우리가 처음 만났던 을지로 3가의 그 다방을 기억하세요? 그 날 당신이 근무처에서 작은어머니로부터 잠깐 만나자는 전화를 받고 영문도 모르고 불려나온 것이 바로 우리의 운명을 결정지은 맞선 보는 자리였다고 했지요. 가난한 집안 8남매의 맏아들로 태어나 30이 넘도록 결혼할 염두를 못내고 있는 아들을 보고 마음이 다급해진 어머니가 작은어머니와 함께 꾸민 고육지책이었다는 것을 후에 어머니한테서 들었어요.”
“그러다보니 그날 상견례 자리에는 시어머니 되실 어머니는 참석하지 못하셨지요. 우리 쪽에서는 해외에 체류중인 부모님을 대신해서 20여 명의 집안 어른들이 대거 참석했는데, 정작 남자 쪽에서는 노랑 남방 셔츠 차림의 당신과 작은어머니 두 사람이 달랑 나타났으니 저희 집안 어른들의 황당함이 어땠을까요? 그때 저도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참으로 기묘한 첫 만남이었지요. 그때 당신은 좀 까칠한 모습이었는데 살짝 웃을 때 눈가의 잔주름이 자상하게 보여 호감이 갔어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단벌 신사인 당신이 며칠 전에 양복을 도둑맞고 당장 입을 옷이 없었다는 얘기를 듣고 가슴이 찡했어요. 그 후 양복을 새로 맞춰 입고 저희 집에 나타났을 때 얼마나 멋있던지 깜짝 놀랐어요. 그때에야 당신이 미남이라는 걸 알았어요. 우리에게도 그렇게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건만 시간은 바람처럼 날아가 버리고 어느새 이렇게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네요. ”
“설사 우리 앞에 홍해 바다가 가로막는다 해도, 나라 경제가 아무리 어렵다 해도 마음마저 위축되거나 너무 의기소침할 필요가 없고 그저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절약하고 나눠 먹고, 또 풍부하면 감사하면서 내 할 일 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요. 하나님이 주신 삶은 아름다운 것, 우리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 감사하면서 누리며 살고 싶어요. 아직 당신이 건강하고 좋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고, 든든한 두 아들이 있고, 또 마침 미국에서 어머님이 시누이와 함께 오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정말 제 마음은 부자가 된 것 같아요. 이제 우리에게 한가지 소망이 있다면 황혼의 낙조가 찬란한 마지막 빛을 발하 듯 우리의 노년도 빛을 발하는 그런 아름다운 삶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보 사랑해요. 당신의 영원한 사랑 드림.”
감회가 새로웠다. 지난날의 아름다웠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평생 내 곁을 지켜준 아내. 나에게는 누구보다도 소중한 존재다. 그동안 서로에게 길들여져 있어 누구와 바꾼다 해도 지금같이 편안할까. 꿈이나 환상만큼 아름답지는 못하지만, 인간을 깊이 감동시키는 것은 꿈이나 환상이 아닌 현실이라고 믿는다. 감동이란 분명 체험만이 가져다주는 진실일 것이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을 잃어가지만 대신 가슴으로 오는 감동은 더욱 폭넓게 물살 저어 온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한다. 남녀가 만나 부부로 사는 건 보통 인연이 아니다. 지구상에 70억 인구가 살고 있는데 그중에 단 한 사람만이 소중한 인연으로 맺어진 것이다. 오랜 억겁의 인연이라야 부부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부부란 무얼까 생각해본다. 부부란 ‘너무 많이 짜진 연고를 나누어 바르는 사이’라는 어느 여류시인의 표현이 가슴에 와 닿는다. “부부란 너무 많이 짜진 연고를 나누어 바르는 사이이다. 남편이 턱에 바르고 남은 밥풀꽃만 한 연고를 손 끝에 들고 어디 나머지를 바를만한 곳이 없나 찾고 있을 때 아내가 주저 없이 치마를 걷고 배꼽 부근을 내어미는사이다.” 부부는 신기한 관계다. 처음 만나는 이에게 건네는 말이 인연이라면, 자신의 곁에 마지막까지 있어 준 사람에게 전하는 말은 운명이라고 한다.
5월21일은 ‘부부의 날’이다. 이날을 법정기념일로 정한 데는 이유가 있다. 가정의 달인 5월에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뜻이다. 잠든 아내의 얼굴을 바라본다. 세월의 무게 때문일까. 몸이 많이 왜소해졌다…마음이 짠하다. 문득 떠오르는 시 한 편.
“오늘 새벽에 아내가 내 방으로 와/이불 없이 자고 있는 나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새우처럼 구부리고 자고 있는 내가/많이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잠결에도 그걸 느낄 수 있었다./어젯밤에는 문득 아내 방으로 가/잠든 아내의 발가락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다가 돌아왔다/노리끼리한 발바닥 끝에 올망졸망 매달려있는 /작달막한 발가락들이 많이 안쓰럽다는 생각을 해보았다/아내도 자면서 내 마음을 짐작했을 것이다/우리는 오래 전부터 다른 방을 쓰고 있다.” 나태주 시인의 ‘안쓰러움’이라는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