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만원짜리 종량제 봉투…이게 ‘찐부자’들의 명품?

비닐봉투, 페인트 통, 주스 상자 모양의 명품백…

명품·패션 업계가 일상 용품 디자인을 모방한 제품들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차별화를 추구하는 명품 업계와 남과 다른 독특한 제품을 사고 싶은 일부 소비자의 욕구가 만나 이러한 현상을 만들어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스페인 명품 브랜드 발렌시아가는 최근 ‘종량제 봉투’를 떠올리게 하는 남성용 토트백(사진)을 출시했다. 파란색 구김이 있는 비닐봉투 모양과 흡사한데, 소재는 최대 10kg까지 견딜 수 있는 폴리아미드 등으로 만들어졌다. 이 가방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995달러(약 138만원)에, 국내 홈페이지에선 147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발렌시아가는 앞서 감자칩 봉투 모양을 본뜬 200만원대 클러치백, 커피컵 모양의 800만원대 가방, 투명 테이프처럼 생긴 400만원대 팔찌를 내놨다.

이밖에도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엔 페인트 통을 본뜬 가방이 있다. 또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모스키노는 오렌지 주스 상자처럼 생긴 백과 셀러리 모양의 클러치백을 내놨다. 가격은 모두 수백만원대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셀린느는 지난 2018년 비닐봉투처럼 생긴 투명 가방을 내놔 인기를 끌었다. 최근 중국에선 프랑스 스포츠웨어 브랜드 데카트론이 포대 모양과 소재를 본 떠 만든 가방이 인기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베이징·상하이 등 대도시 곳곳에서 이 가방을 멘 이들이 눈에 띄고 소셜미디어(SNS)엔 “어디서 구할 수 있느냐”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브랜드의 일상 차용 전략은 부유층의 차별화된 명품 소비 욕구가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대중적인 디자인에 명품 로고를 붙이면 누구나 알아보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값비싼 물건이 된다는 것이다.

잉글랜드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대 패션 문화 교수 가비 해리스는 가디언에 이러한 현상에 대해 “부유층이 대중 소비에 참여하면서도 배타성을 유지하는 특권이 숨어 있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자신이 ‘찐부자’임을 내세울 수 있는 새로운 소비 심리의 유형”이라고 평했다.

실제 이런 제품은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아내 로렌 산체스, 슈퍼모델 지지 하디드 등 셀럽들이 들어 화제가 됐다. 명품·패션 업체들로선 화제성을 노리는 면도 있다. 이런 제품은 대부분 Z세대(1990년대 후반 출생자)를 통해 소셜미디어(SNS)에 확산돼 바이럴 마케팅 효과를 낼 수 있다. SNS에서 관련 갑론을박이 벌어질 정도다. 발렌시아가의 비닐봉투 모양 가방을 두고선 “디자인에 비해 터무니없는 가격” “세계에서 가장 비싼 쓰레기봉투”란 비판과 함께 “실험적이다” “그래도 살 사람은 산다”는 반응도 나왔다.

전통적인 형태의 명품 소비가 침체되자 점차 파격적인 시도를 하는 것이란 해석도 있다. 컨설팅기업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명품 브랜드 매출은 1조4800억 유로(약 2396조8700억원)로 전년보다 1~3% 감소했다.

명품의 일상 모방 전략이 확장성에 한계가 있단 지적도 있다. 패션 디자이너 오르소라 드 카스트로는 가디언에 “과거 앤디 워홀의 팝아트 캠벨 수프 깡통 연작은 산업사회의 대량 생산과 소비에 대한 풍자란 메시지가 있었지만, 요즘의 이런 디자인엔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는지 모호하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