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한 가운데 있을 적에 나는 주일이면 밖으로 나갔다. 배낭에 코펠, 버너, 침낭, 라면, 커피믹스에 사과 하나 챙기면 아쉬울 것도 없었다. 집에서는 밥 한번 해 보지 않았던 나였기에 엄마는 짐을 챙겨 나가는 나를 볼때마다 “밖에 나가면 뭐 좀 해 먹긴 하니? 할 수 있는 게 있어?”하고 물으셨다. 나가서 내가 얼마나 잘 해먹는지 알면 엄마가 서운해 하실 거 같아 그냥 조용히 혼자 웃었다. 더우면 더운 데로 추울 땐 그 추위를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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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에 ‘할머니 캠프’를 운영한지 4년째다. 올해도 아이들이 사는 곳과 다른 앨라배마 특유의 환경을 소개하고 사는 지역이 달라 자주 못 보는 두 손주가 함께 뒹굴고 놀며 정을 쌓도록 분위기를 조성했다. 두 딸의 성향이 다르듯이 그들이 키운 아이들도 다르다. 버지니아에서 큰딸이 자유로이 키운 8살 큰아이를 나는 ‘야생화’라 부르고, 조지아에서 둘째딸이 조심조심 감싸며 키운 5살 작은아이는 ‘온실화’ 라 부른다. 그렇게 다른 환경에서 크는 아이들은 성격이 다르고 먹는 음식과 노는 방식이 달라 뭐든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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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잡지를 뒤적이다가 정물화 한 폭에 눈길이 딱 멎었다.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구두’라는 제목의 그림인데 낡은 구두에는 알 수 없는 슬픔과 연민, 그리고 삶의 고단함이 짙게 배어있었다. 이 구두가 왜 그토록 연민의 감정을 끌어내는지는 말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T.S. 엘리엇의 말처럼 “진정한 예술작품은 설명하기 전에 이미 전달되기 때문”일까. 이 구두를 보며 느끼는 감정은 슬픔과 연민이다. 헌 구두를 표현했을 뿐인데도, 신발 주인이 겪었을 삶의 쓸쓸함과 고단함의 무게에 가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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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에서 가끔 만나는 한국 분을 탈의실에서 만나 인사를 나눴다. 전에 추운 겨울날 체육관 앞에서 내 차가 시동이 안걸렸을 때 자진해서 케이블로 자신의 차에 연결해 도와준 친절한 분이다. 고마워서 점심을 사겠다고 해도 사양했다. 그분은 우체국에서 40년 넘게 일하고, 작년 70세에 은퇴했다고 했다. 은퇴 연금을 받으며 사는 이야기가 나왔다. 401K 이야기도 나왔다. 401K에 관한 신통한 내 경험을 이야기했다. 나는 은퇴한 지 10년도 넘었다. 연금을 받아 생활한다. 그런데 매달 500달러가 따로 나왔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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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15 베이질 브라운의 주름진 손이 움푹 들어간 구릉의 한지점에 머문다. 유적 발굴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확신에 찬 삽질을 계속한다. 경제적인 이익도, 명예도 얻지 못하는 그가 평생을 바쳐 유물을 파내며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제 2차 세계 대전 무렵 영국 서퍽(Suffolk) 지역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과거를 현실로 끌어 올리는 발굴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다. 남편을 잃고 어린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상류층 부인 이디스는 자신의 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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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끝 접히는 길모퉁이에서 우편함 대신 밤 하늘을 열어 보면 배달된 점자 편지 한 장 검푸른 편지 위에 뜨거웠던 말 식은지 오래 말 대신 미리내 위로 꾹꾹 눌러 적은 마침표 같은 마음 손끝에 맺힌다 햇살 아래서 꺼내지 못했던 말 괜찮다며 덧댄 마음 붉게 부풀어 올라 고름처럼 번진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고 손끝으로 더듬어도 울음 먼저 와닿아 불빛 꺼진 커튼 주름 뒤에서 살랑이던 잔향 잠들지 못해 밤마다 점자 위를 뒤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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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지아조(堅持雅操)’는 곧고 바른 지조와 절개를 굳게 지킨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조를 지키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자기의 신념에 어긋날 때면 목숨을 걸고 항거하여 타협하지 않고, 부정과 불의한 권력 앞에서는 최저의 생활, 최악의 곤욕을 무릅쓸 각오가 없으면 섣불리 지조를 입에 담을 수가 없는 말이다. 정신의 자존자시(自尊自恃)를 위해서는 자학과도 같은 생활을 견디는 힘이 없이는 지조는 지켜지지 않는다. 신채호 선생이 망명 생활 중 추운 겨울에 세수를 하는데 꼿꼿이 서서 두 손으로 물을 움켜다 얼굴을 씻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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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동경해 왔던 북유럽 몇 개 국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독일, 폴란드, 그리고 발트 3국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같은 북유럽 국가들이었는데,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적인 북유럽의 모습과 현실적인 측면의 간극을 느끼게 해 준 경험이었다. 북유럽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최고의 복지 국가라는 개념이 있었고,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예상치 못한 실망감이 좀 있었다. 물가가 전반적으로 비쌌고, 가솔린도 갤론 당 6달러가 넘었다. 그리고, 바람도 꽤 많은 편이라 다니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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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그루의 나무와 이파리의 색감으로 네모난 평면을 흘려 채우는 세 제곱의 창문 밖 하루에 붙박힌 그는 그 날도 날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그 곳에 펄럭이며 펄럭이며 바람에 매달린 주소지에 둥지를 틀 일인가 힘들게 날지 않아도 먹고는 산다는데 충분히 날았지만 누구도 알지 못하거나 한 번도 날아 보지 않은 것 사이에서 날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평생을 망설인다는데 날아라 날아라 자꾸 부추기면 어쩌려느냐 날지 않는다고 날개가 없는 것도 아니어서 마을엔 윙 카페가 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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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만 봐서는 서늘한 기운이 묻어나는 가을 즈음에 읽으면 어울릴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책장을 펼치고 보니 여름 다섯 달 동안 벌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소설은 병증이 심해져서 더 이상 혼자 힘으로 일상을 살아가기 힘든 아버지 ‘보’와 아버지와의 관계가 소원했던 아들 ‘한스’의 투박하면서도 애틋한 이야기다. 이야기는 보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그래서 그랬을까. 보에 비해 나는 아직 젊은데도 어느새 보의 입장이 되어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었다. 병든 보는 화장실 사용이나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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