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한 가운데 있을 적에 나는 주일이면 밖으로 나갔다. 배낭에 코펠, 버너, 침낭, 라면, 커피믹스에 사과 하나 챙기면 아쉬울 것도 없었다. 집에서는 밥 한번 해 보지 않았던 나였기에 엄마는 짐을 챙겨 나가는 나를 볼때마다 “밖에 나가면 뭐 좀 해 먹긴 하니? 할 수 있는 게 있어?”하고 물으셨다. 나가서 내가 얼마나 잘 해먹는지 알면 엄마가 서운해 하실 거 같아 그냥 조용히 혼자 웃었다.
더우면 더운 데로 추울 땐 그 추위를 온 몸으로 느끼고 싶어 겨울산행을 즐겼다. 한번은 겨울에 야간 산행을 한 적이 있었다. 한밤중에 오르기 시작하여 산 정상에서 일출을 보자고 한 것인데 눈이 많이 와 있던 터라 해드 라이트를 켜고 올랐지만 우리 일행은 길을 잃고 말았다. 물론 산악 전문 가이드와 함께해서 크게 위험할 거라 생각하진 않았는데 가이드가 길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우리는 어둠과 추위 속에 꼼작 없이 발이 묶여 버렸다. 주위 환경이 어떠 한지 분간도 할 수 없을 어둠속에서 우리는 해가 뜰때까지 움직이지 않기로 결정하고 잠들지 않도록 노래를 부르고 서로에게 말을 걸며 정신을 차리자고 속삭였다. 그런데 어느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고요와 어둠과 추위만 남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등반하다 얼어 죽은 사람들이 생각났다. “아, 이렇게 얼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정신차려야 하는데 자꾸 눈이 감기고 잠이 쏟아졌다. 나만 그런게 아닌지 모두가 조용했고 움직임이 없었다. 그저 더 단단히 서로 꼭 붙어 있었던 것만 기억된다. 산악 가이드는 곧 있으면 해가 뜰 테니 조금만 더 견뎌 보자고 우리 모두를 깨우며 노래를 시켰다. 비몽사몽간에 노래인지 모를 소리라도 계속 내고 있는데 드디어 연한 빛이 비추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일제히 소리쳤다. “해 뜬다. 해가 떠요!” “이제 살았다!” 그제서야 서로를 일으키며 떠오르는 붉은 해를 보는데 눈물이 글썽거렸다. 너무 아름다웠다.
눈 앞엔 하얀 눈꽃으로 뒤덮인 나무들이 아침 이슬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고 세상 고요하고 깨끗한 순백의 산이 온순하게 자리하며 우리를 맞이했던 것이다. 불과 30여분 전 까지만 해도 죽음을 느꼈는데 빛이 나오니 모든 것이 생명으로 다시 보여 그저 놀랍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어려운 야간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 끓여 먹었던 라면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음식이었고 잊지 못할 맛이었다. 그렇게 배낭 하나 짊어지고 떠났던 시절, 짐은 적었지만 풍족한 추억을 만들 수 있었던 그때와는 달리 요즘은 캠핑의 맛이 많이 달라져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럴듯한 차에 집 한 채를 옮겨 놓을 듯, 빼곡이 실어온 것들을 하나씩 꺼내 집을 짓듯 텐트를 친다. 얼마나 크고 넓은 지 그 안에서 부엌 살림도 차려지고 잠을 자는 에어 매트리스, 이불, 베게까지 준비하고 그 옆에 강아지 자리까지 마련해 놓는다. 안전하고 편안한 상태에서 혼자 호사를 누리듯 즐기며 힐링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인스타 그램에 올라온 사진들을 보면 이게 캠핑이야? 집이야? 하고 묻게 된다. 여행, 특히 캠핑 할 땐 부족한 게 맛이건만, 요즘은 무엇 하나 부족할까 싶어 바리바리 싸 들고 가는 모습을 보면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르는 듯 보여 나서는 걸음이 버겁게 보여지기도 한다.
지난주 가족여행 중 스모키 마운틴 아래에서 작은아들이 배낭 하나 메고 산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 옛날 엄마처럼 나도 아들에게 한마디 했다. “혼자 가도 괜찮겠니? 조심해서 다녀와라.” “다녀오겠습니다.” 큰소리 치고 웃으며 가볍게 나선 아들은 산행 중에 곰을 만나 죽는 줄 알았다며 줄행랑을 칠 거라곤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곰과 눈이 딱 마주쳤다며 호들갑 떠는 녀석에게 이 날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가벼운 걸음에 잊지 못할 추억이 가득 담기는 여행이 되면 훨씬 좋을 텐데 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만남이 있을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