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인을 비롯한 이민사회는 공포와 우려에 가득차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무차별적 이민단속은 불법체류자 단속을 핑계로 내세우고 있지만, 합법이민자 및 시민권자마저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지난달 불체자 단속을 핑계로 LA한인타운에 무장한 군대를 파병하고 최루탄을 터뜨려 ‘전쟁터’로 만들어버린 것이 극단적인 예이다. 또한 마리에타 네일샵, 앨라배마 한인업소 등에도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이 나타나, 직원 체류신분을 검사하고 체포하는 것이 현실이다.
모든 이민자는 미국법을 지켜야 하고, 수사기관에 협조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반대로 수사기관도 법을 지켜야 한다. 경찰관과 단속요원을 비롯한 모든 수사기관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단속 요원은 이름표도 가리고 얼굴도 가리고 나타난다.
직장, 법원과 같은 일상 공간에 사복과 복면을 착용한 요원들이 출현해 사람들을 체포하는 광경은 법치국가의 모습이라기보다 권위주의 체제의 그것에 가깝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관행이 단지 ‘불법체류자’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이민자 커뮤니티 전체, 나아가 지역사회 전체에 공포와 불신을 심는다.
지난달 LA에서 발생한 알렉스 파디야(Alex Padilla) 상원의원의 체포는 ‘공포분위기 조성’의 절정이다. LA한인타운을 대표하는 파디야 의원은 국토안보부 장관에게 질문하려다, 연방 요원들에게 수갑이 채워지고 강제 퇴장당했다. 파디야 의원은 “연방 상원의원이 질문하려 했다가 체포됐다면 일반 시민들은 어떤 대우를 받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파디야 의원은 멕시코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LA의 저소득 이민자 밀집 지역에서 자랐지만, 열심히 공부해 MIT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정치에 입문했다. 전형적인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그조차 ‘백인이 아니라서’ 수모를 당하는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파디야 의원은 “이민자의 아들로서 이민자와 소외된 사람들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며 질문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알렉스 파디야 연방상원의원은 자신의 경험을 반영해 최근 ‘VISIBLE Act(가시성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의 복면 착용을 금지하고, 신분을 명확히 밝힑것을 요구한다. “시민들이 신원을 알 수 없는 무장 요원에게 체포되는 현실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파디야 의원의 취지다.
권력은 투명해야 하고, 그 행사는 공개적이어야 하며, 그에 따른 책임도 명확해야 한다. 복면쓴 단속요원의 이민자 체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이 어떻게 행사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권력이 누구에게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는 종이 위의 글자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일상에서 실천되고, 도전받고, 때로는 직접적 요구를 통해 지켜진다. 트럼프 행정부의 복면쓴 단속요원의 이민자 체포, 그리고 이민자 출생 시민권 박탈은 미국 현행법을 명백히 위반하는 것이다. 현재 양식있는 정치인, 법조인, 시민단체가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지만 이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한인사회도 자신이 거주하는 선출직 공무원과 리더들에게 무차별 이민단속과 출생시민권 박탈에 대한 입장을 묻고, 내년 중간선거에서 투표로 심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