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혁명이 사회 초년생에게 유독 크고 불균형한 타격을 입히기 시작했다.”
“AI가 노동자의 ‘사다리 하단’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와 하버드대 연구진은 최근 논문을 통해 이렇게 경고했다. 청년층이 제대로 된 경력을 쌓기도 전에 직장에서 밀려나는 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현상은 ‘조용한 침식(Quiet Erosion)’이란 말로 불린다. AI가 소리 없이 고숙련 일자리로 향하는 진입 경로를 잠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스탠퍼드대 산하 디지털 이코노미 랩은 지난해 11월에 발표한 ‘석탄광의 카나리아, 인공지능이 최근 고용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여섯 가지 사실’ 보고서에서 이를 지적했다. 연구진의 분석에 따르면 개발자와 서비스업종 등 AI 노출도가 높은 분야에서 사회 초년생(22~25세) 취업자 수는 2022년 말 이후 다른 직종과 견줘 평균 16% 감소했다. 고숙련 경력직 일자리는 안정적으로 유지되거나 오히려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AI 노출도가 낮은 건강보조원, 유지·보수 기사, 택시 운전사 등 현장 중심 직종 역시 고용이 유지되거나 증가하는 흐름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자리 대부분은 청년층이 선호하지 않는 업종으로 꼽힌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직무일수록 AI 노출도가 높은데 이런 업종 내에서도 청년층이 먼저 밀려나는 구조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하버드대도 ‘생성형 AI, 경력자에게 유리한 기술 변화: 미국 이력서 및 채용공고 데이터 분석’ 보고서를 통해 생성형 AI가 ‘경력 사다리’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6만2000명 근로자의 이력 자료를 토대로 한 이 논문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2년 중반까지 신입 직원(주니어)과 경력직(시니어) 고용은 나란히 증가했다. 하지만 생성형 AI인 챗GPT가 출시된 2022년 이후 주니어 고용 인원은 정체기를 거쳐 감소세로 돌아섰다. AI를 도입한 기업의 경우 사회 초년생 인원은 2023년 1분기 이후 6개 분기 만에 9% 감소한 반면 경력직은 대체로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경력직 고용은 2015년 이후 꾸준히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진은 사무직 초년생이 보통 프로그램 오류를 수정하거나 법률 문서를 검토하는 등 생성형 AI로 대체하기 쉬운 반복적인 작업을 주로 수행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신입이 경력을 쌓아 중견 자리로 올라가기 위한 디딤돌에 해당하는 작업이다. 논문에선 “이런 일자리의 감소는 산업에 막 진입한 근로자에게 경력 사다리의 하단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짚었다.
과거의 기술 변화는 새로운 형태의 신입 일자리를 만들어 냈고, 다음 단계로 올라설 발판도 함께 제공했다. 그러나 생성형 AI는 다르다. 경력 사다리의 가장 아래 단부터 허물어뜨린다. 이미 경험을 쌓아둔 이들에겐 기회가 남아있지만, 역량을 축적하기도 전에 AI를 맞닥뜨린 청년층에게는 진입 기회 자체를 좁히고 있었다.

산업 영역을 가리지 않고 확산하고 있는 AI발 고용 충격에 대응해 각국 정부는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역량을 일찌감치 갖추도록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국은 지난해 4월 ‘AI 활용을 포함한 근로자 숙련 향상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핵심은 4년제 대학 학위 중심의 경로에서 벗어나 기업 수요에 맞춘 대체 자격증과 기술 인증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다.
유럽은 고용 상태와 관계없이 재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개인학습계좌(ILA)를 지원하고 있다. 짧은 기간에 특정 기술을 배울 수 있는 ‘마이크로 자격증’ 제도도 확대하고 있다. 누구나 쉽고 빠르게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국가가 이를 증명해 일종의 숙련 사다리를 구축하는 차원이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국가기술자격이 취업과 연결되는 거의 유일한 공인 자격이다. 문제는 응시 요건이 지나치게 경직돼 청년층에게 사실상 닫혀 있다는 점이다. 국가기술자격은 학위·자격·경력 및 훈련 가운데 하나 이상을 갖춰야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데, ‘고숙련’을 증명하는 자격인 기술사·기능장은 경력 요건이 ‘9년 이상’으로 설정돼 있다. 사회에 막 진입한 20대가 9년 경력을 채우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고, 30대에게도 절대 만만치 않은 장벽이다. 하위 단계인 기사·산업기사 역시 관련 대학 전공 또는 일정 경력 요건을 요구한다. 비(非)전공자에게는 진입 장벽이 높다.
노동부 관계자는 “AI 시대를 맞아 네오블루칼라가 주목받으면서 국가기술자격 응시자는 매년 늘고 있지만 과도한 자격 요건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에 공감한다”며 “AI 시대에 요구되는 새로운 자격증과 경력 요건 관련해 제도 개선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김연주 기자 kim.yeo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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