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너무 늦게 두 영웅을 찾아뵙습니다. 데니슨 호이어, 그리고 아서 쉬프너.”
지난 14일 오전 미국 워싱턴 인근 알링턴의 한 호텔. 조식을 먹고 있던 노신사들 앞에 두 사람의 이름이 호명됐다. 이름이 불린 두 사람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휠체어에 몸을 맡기고 단상으로 나오는 내내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76년 전인 1950년, 훈련을 마치자마자 이름도 들어본 적 없던 나라 한국 전쟁터에 투입됐던 19살 이등병은 이제 혼자 거동하기도 어려운 90대 노인이 돼 있었다. 그렇지만 모자를 다시 눌러쓰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 한국 정부가 수여한 ‘평화의 사도 메달(Ambassador for Peace Medal)’을 경건하게 받아들었다.
호이어는 “그저 동맹국을 위해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며 “나는 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보훈부 장관 명의의 메달을 목에 걸고서야 “한국과의 인연으로 평생을 행복하게 지냈다”며 “한국이 아직까지 나를 기억한다는 걸 알게 됐으니 더 바랄 게 없다”고 했다.
쉬프너는 “학교를 나오자마자 해병대에 입대해 부산으로 상륙했다”고 했다. 전선이 이미 대구까지 밀린 상태였다.
한동안 눈을 감고 있던 쉬프너는 깊게 팬 주름진 얼굴에 밝은 미소를 지으며 “서울 수복 작전 과정에서 한 궁궐에 들어갔던 때가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쏟아지는 총탄을 뚫고 들어간 왕궁은 너무나 경건한 다른 세상이었다”며 “나이는 어렸지만 그제야 내가 이러한 평화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날 메달 수여식은 깜짝 행사에 가깝게 진행됐다. 보훈부는 참전용사들을 관리하며 기념비 참배 행사 등을 진행하는 미국 비영리 단체와 협업해, 행사 참여 인원 중 한국전 참전용사가 확인되면 현장으로 찾아가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이길현 보훈관은 “이미 고령이 된 참전용사를 한 명이라도 더 만나 감사를 전하기 위한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버팔로 나이아가라 아너 플라이트’의 디렉터 크리스틴 홀은 “우리는 한국전쟁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쿠바 미사일 위기 등 냉전 시기의 전쟁,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을 모시고 있다”며 “한국 정부의 이러한 노력은 미국의 젊은 사람들이 우리가 한국에서 무엇을 했는지 배울 수 있는 기회이자, 양국 간 동맹을 더 발전시킬 시작”이라고 했다.
한국 정부의 감사패를 한참이나 들여다보던 호이어는 “미국과 한국은 함께 피를 흘린,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동맹”이라며 “한국과 미국이 왜 동맹이 됐는지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학교에서도 가르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아들과 딸, 손자들도 70년 전 미국과 한국의 할아버지들이 했던 것처럼 계속 친구(동맹)에게 좋은 사람으로 함께 살아가야 한다”며 “도움이 필요한 친구가 있다면 나 자신을 위해서도 항상 돕는 것이 당연하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쉬프너는 “내 아들과 두 명의 딸, 그리고 8명의 손주, 11명의 증손주에게 내가 전우들과 한국에서 했던 일을 말해줬다”며 “나도, 그리고 전쟁 때 김포 전선에서 함께 싸웠던 내 사촌도 아직 살아있지만 미국과 한국이 무엇을 위해, 왜 함께 싸웠는지 기억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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