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은퇴하려 했는데…. 내가 시작한 일이니, 내가 마쳐야겠죠. 허허.”
지난 13일 서울 서소문 배재학당역사박물관에서 만난 장태한(69) UC리버사이드 소수인종학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장 교수는 재미동포와 흑인의 갈등을 연구한 학자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초창기 미주 활동을 다룬 『도산 공화국』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가 은퇴를 접고 ‘AP 한국어 도입 추진 위원회(이하 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AP는 대학과목 선이수제(Advanced Placement)를 뜻한다. 미국 고등학생이 대학 수준의 과목을 수강하고 시험 봐서 대학 학점을 미리 따는 프로그램이다. 한국어를 AP 과목으로 넣자는 게 위원회의 설립 목적이다. 위원회는 지난 4일 국회 교육위원회 백승아 의원(더불어민주당), 미래교육자치포럼과 함께 국회에서 AP 관련 토론회를 열었다.
한국어는 미국에서 수능에 해당하는 SAT의 한 과목이었다. 1995년 한국어를 SAT 과목으로 지정하는 데 힘을 쓴 사람이 장 교수였다. 그해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95년 한국어를 가르치는 미국 고교가 한 곳이었다. 장 교수는 SAT를 담당하는 비영리 기관인 칼리지 보드를 설득했다. 주말학교까지 포함하면 2만명 이상이 한국어를 배운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재미동포가 적극적으로 뛰었고, 삼성전자도 도움을 줘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칼리지 보드는 2021년 한국어를 비롯한 SAT 과목별 시험(Subject Test)을 폐지했다. 당시 코로나19 때문에 수험생들이 SAT를 보기 어려웠다. 게다가 장 교수가 다니는 UC리버사이드를 포함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10개 캠퍼스가 SAT 점수를 입학 사정에 반영하지 않게 됐다. 저소득층·소수인종에게 불리하고, 대학 성적과 연관성이 적다는 이유에서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등 일부 대학도 SAT 과목별 시험 점수를 보지 않았다.
수년 전부터 K팝,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등 한국 문화가 인기를 끌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미국인이 늘고 있다. 교민 사회에 한국어 SAT 폐지가 아쉽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한국어 AP가 대안으로 주목 받게 되면서 위원회가 꾸려졌다.
한국어 AP를 도입하려면 한국어 고급반인 레벨 4 이상을 가르치는 고교가 250개 넘거나, 한국어 AP를 인정하는 대학이 최소 100개여야 한다. 한국어 정규 과목을 채택한 고교가 217개인데 대부분 레벨 1~3(초·중급) 수준이라서 여기엔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150여개 대학이 한국어 강의를 개설한 상태라 요건에 맞는다.
걸림돌은 ‘초기 투자 자금’이다. 칼리지 보드는 수혜자 부담 원칙을 내걸고 있다. 한국어 AP 교재를 만들고 문제를 내는 개발비가 150만~200만 달러이다. 한국어 AP 응시자가 한해 5000명이 될 때까지 매년 운영비를 칼리지 보드에 내야만 한다.
현재 AP 제 2외국어 과목은 중국어·일본어 등 7개이다. 중국어·일본어는 중국·일본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장 교수는 “한국어 AP는 동포 2, 3세가 한국인 정체성을 잃지 않게 하고, 미국인이 한국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할 것”이라며 “교민 사회가 모금하고,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고, 기업이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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