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돕고 싶다. 강한 국가의 궁극적 목표는 평화다. 이것이 아버지의 신념이었어요. 시련을 딛고 경제 대국으로 도약한 한국의 다음 단계는 무엇일지 평생 고민하셨죠. 그 답이 평화였던 거예요.”
클라라 박(한국명 박주영) 어거스타 주립대학교 음대 교수는 고 박한식 조지아대(UGA) 명예교수의 1남2녀 중 장녀다. 피바디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음악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로 일하고 있다. 박 교수 별세 직후 지난 2월 박한식 평화연구소를 설립해 이사를 맡았다. 25일 연구소 출범 후 처음 열린 애틀랜타 카터센터 학술대회장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아버지는 노래방에 가는 것을 가장 좋아하셨다”며 “그래서 북한 사람들과도 노래방에 가서 친해졌냐고 늘 농담처럼 물어보곤 했다. 평화란 ‘하모니’라는 말씀도 자주 하셨는데, 나는 음악가이다 보니 그 말이 참 와닿았다. 서로 다른 개인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 목표가 돼야 한다”고 했다.
박한식 교수는 1965년 미국에 유학 차 건너왔다. 그가 워싱턴DC의 아메리칸 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밟을 때 클라라 교수가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돈을 벌기 위해 중국 식당에서 ‘버스보이’(웨이터를 돕는 종업원)으로 일했다”며 “이후 1971년 UGA 교수로 임용됐지만 당시 남부는 인종갈등이 극심했고, 나는 가족과 한국어만 사용했기에 영어를 할 줄 몰랐다. 한국으로 돌아가자며 떼를 썼지만 아버지는 미국에서만 배울 수 있는 생각과 삶의 목표가 있다고 가르쳤다. 다양한 인종, 배경, 민족의 사람들이 섞여 사는 이곳이 그에게는 ‘평화’의 해법을 찾을 수 있는 일종의 연구실이었다”고 회상했다. 용광로 같은 미국의 문화 다양성은 그에게 평화의 열쇠였다. 박한식 교수는 북한문제를 넘어 전세계에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평화를 연구하고자 했다.
박한식 평화연구소는 미래 세대에 평화와 연대의 가치를 알리는 역할을 할 예정이다. 박한식 교수는 만주에서 태어나 중국 국공내전과 한국전쟁을 차례로 겪은 뒤 평화 연구에 일생을 바쳤다. 이산가족 상봉을 적극적으로 도운 것도 그가 직접 경험한 분단 트라우마 영향이 컸다. 전쟁의 역사적 상처가 없는 집단 또는 세대에게 평화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클라라 교수는 “의식적으로 평화와 다양성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한다”며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평화란 무엇인지’, ‘어떻게 평화를 이룰 수 있을지’ 묻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가령 ‘평화란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과만 노는 거야’라고 말하는 아이가 있다고 해봅시다. 우리는 스포츠처럼 취향과 생각에 따라 편을 나누는 것을 좋아하니까요. 그때 우리는 혐오에 반대하고 ‘진정한 조화’를 가르쳐야 합니다. 가장 큰 참나무는 가장 작은 씨앗에서 자라난다고 하죠. 이 연구소가 작은 씨앗이 되길 바랍니다.”
카터센터=장채원 기자 jang.chaewon@korea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