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도 7000억 내고 굴복? “트럼프 행정부, 대학 자유 말살”

미국 하버드대가 5억 달러 규모의 합의금을 내고 연방 보조금 등을 다시 받는 내용의 최종 합의안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조율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학 길들이기’ 차원에서 벌인 정부 지원금 동결 조치를 풀기 위한 타협책이지만, 대학의 자율성이 크게 침해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12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하버드대는 트럼프 행정부에 직업교육·학술프로그램 투자 명목으로 5억 달러를 제공할 계획이다. 능력 기반 채용·입학 및 학생 시민권 보호 등 연방 규정을 준수하고,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 대응 정책을 강화하겠다는 약속도 할 예정이다.

협상 관계자는 WSJ에 “하버드대가 이를 행동에 옮기면 트럼프 행정부는 동결된 수십억 달러의 연방 보조금을 하버드대 연구 및 기타 프로그램에 다시 지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버드대를 상대로 벌인 각종 법 위반 의혹 조사도 중단하고, 지난 5월부터 막혔던 유학생 수천 명의 입학도 허용할 것으로 보인다.

하버드대가 내건 금액은 현재까지 트럼프 행정부가 대학들과 합의한 금액 규모 중 최대다. 앞서 브라운대는 10년에 걸쳐 5000만 달러(약 692억원), 컬럼비아대는 3년에 걸쳐 2억 달러(약 2700억원)를 지불하기로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023년 10월 가자지구 전쟁 발생 후 대학에서 반유대주의 시위가 잇따른 것과 관련해 대응 미비 책임을 물으며 하버드대 등 명문 대학에 보조금 지급 중단 등을 벌이며 압박해왔다.

다만 합의문에 담길 표현을 두고 양측의 조율이 이뤄지지 않으면 협상이 무산될 수도 있다. 관건은 입학 관련 자료 공개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학이 능력에 따른 선발 원칙을 잘 지키는지 직접 살펴보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하버드에 인종, 성별, 시험 점수 등을 포함한 상세 입학 자료를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앞서 브라운대와 컬럼비아대가 해당 정보를 제공하기로 합의한 것과 달리 하버드대는 이를 과도한 개입으로 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대학들에 ‘감사 의무’ 요구…“자유 말살”

미 대학들 사이에선 트럼프 행정부가 대학 자유를 말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가디언은 “트럼프에 대한 (대학들의) 항복은 미국 고등교육의 어두운 새 시대가 시작됨을 의미한다”고 했다. 토드 울프슨 미국대학교수협회(AAU) 회장은 가디언에 “대학 독립성에 대한 재앙”이라고 말했다. 데이비드 포젠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도 “합의안은 강탈(extortion)”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합의금 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대학도 있다.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는 10억 달러(약 1조 3843억원) 규모의 합의금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 UCLA는 앞서 학내 친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를 방치했다는 이유로 유대인 학생들이 제기한 소송에선 613만 달러(약 85억원)의 배상금을 내기로 합의했다.

제임스 밀리컨 캘리포니아대 총장은 “이 정도 규모의 합의금을 지불하면 미국의 가장 위대한 공립대학 시스템을 완전히 파괴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민주당)도 “트럼프 행정부가 UCLA에 제시한 10억 달러는 역겨운 정치적 갈취(disgusting political extortion)”라며 “캘리포니아주는 이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수영 기자 ha.su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