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당국, 범법자 취급해 마구잡이 단속
현대차 인근 협력업체 사무실도 급습
현장 작업자 아닌 직원들도 체포·연행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 엘라벨에 있는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체포된 475명 중 대부분이 한국인이라고 이민당국이 발표한 가운데, 구금된 한국인 무비자(ESTA) 또는 B-1 비자 소지자 중 위법행위를 하지 않은 사람도 상당수 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ESTA(전자여행허가)를 이용하면 관광 또는 상용 목적으로 90일 이내 미국을 방문할 수 있다. ESTA는 연장이 불가능하다. B-1비자는 미국 내에서 사업 목적으로 단기 체류하기 위한 비자로 각종 모임, 회의, 무역 박람회 등에 참석하고 계약 협상과 체결 등 상업적, 전문적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또 특정 조건에 한해 장비 설치를 하거나 공장 현장을 점검할 수 있다. 흔히 관광비자인 B-2와 통합되어 발급되고, 연장하거나 다른 신분으로 변경할 수 있다. 단, ‘현장 업무’는 엄격히 제한된다. B-1과 ESTA 소지자는 비자가 있고 없고의 차이일 뿐 업무 허용 범위는 유사하다. 두 신분 모두 현장작업자가 되면 불법이다.
둘루스에 사무실을 둔 김운용 변호사는 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어제 주재원 비자인 E2, 영주권 소지자 등은 풀려난 것으로 파악됐는데, B-1과 ESTA는 아직 구금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는 “무비자로 입국한 한국인은 아마 신속 추방되는 절차를 밟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ESTA 신청 시 ‘추방재판의 기회를 포기하겠다’는 항목에 서명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상황을 설명하는 기회인 추방 재판 없이 ‘신속 추방’ 과정을 거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주재원 비자’로 불리는 E-2는 한국 법인에서 미국 현지 법인으로 직원을 파견할 때 주로 받는 취업비자다. 김 변호사는 어제의 단속 과정을 전부 알 수는 없지만, “과연 절차상 문제가 없었는지, 과잉 집행은 없었는지 의문이 든다”며 “직원에게 단속 요원이 총구를 겨눈 일도 있었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만약 이런 전언이 사실이거나, 영어를 못하는 직원에게 통역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정당한 절차’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찍힌 사진을 보면 무장한 요원들이 복면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한 것을 알 수 있다.
김 변호사는 또 4일 메타플랜트 내 LG엔솔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자동차로 5~10분 떨어진 협력업체에도 이민자 단속이 진행돼 B-1과 무비자 신분의 직원들도 잡혀갔다고 전했다. 그는 “이민 당국이 집행한 영장에 구체적으로 어떤 지역이 명시돼 있는지 모르지만, 이 회사는 전혀 위법 상황이 없으며, 증거도 있지만 휴대폰을 빼앗으며 잡아갔다”고 주장했다. 건설 현장에서가 아닌, 사무실에 있던 한국인 직원들도 구금됐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한 사람, 한 사람 제대로 심의를 거치지 않고, 막무가내로 잡아간 것으로 보인다”며 “(구금된 한국인들이) 모두 현장 작업자였는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서 “국가적 투자인데, 공장을 초기에 셋업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인력을 올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최근 대사관에서 E-2와 같은 비자가 이유없이 나오지 않는 경향을 꼬집었다.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데 ‘이유 없이’ 취업비자가 나오지 않는 사례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는 “비자는 안 줘놓고 왜 불법을 저지르느냐고만 한다. 대기업 차원에서 나서서 로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지아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활동하는 안찬모 변호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어젯밤부터 한국에서 ‘직원이 연락두절됐다. 찾아달라’는 문의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한국에 있는 협력업체 직원들이 조지아로 ‘단기 출장’와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는 “4일 밤 기준 ICE 데이터베이스에 구금자들의 정보가 뜨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또 “한국에서 만삭인 아내를 두고 연락이 끊긴 직원이 있다고 들었다”며 지금으로서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소재 파악이 제일 중요하고, 이럴 때 영사관 역할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애틀랜타 총영사관 관계자는 “영사관 내부적으로 TF팀을 꾸려 긴급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LG엔솔도 변호인단을 꾸려 대응하기 위해 단속과 관련된 협력사 직원들의 인적사항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윤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