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현대 양자컴퓨터 개발의 기초가 된 연구 업적을 남긴 물리학자 존 클라크와 미셸 드보레, 존 마티니스 등 3인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이론 수준에 머물던 양자역학 현상이 거시 세계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증명하면서 양자컴퓨터 개발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7일 “거시적 양자역학적 터널링과 전기회로에서의 에너지 양자화를 발견한 공로가 있다”며 이들에게 노벨 물리학상 수여한다고 발표했다.
클라크(83·영국) 교수는 현재 UC 버클리에, 드보레(72·프랑스) 교수는 예일대와 UC 샌타바버라에, 마티니스(67·미국) 교수는 UC 샌타바버라에 각각 재직 중이다. 수상자들은 상금 1100만 스웨덴 크로나를 똑같이 나눠 받게 된다.
클라크 교수 등은 1984~1985년 ‘손에 잡히는 크기의 전기 회로’에서도 양자역학 현상이 일어날 수 있음을 최초로 실험으로 증명했다. 이들의 실험 이전까지 양자 현상은 극도로 작은 미시 세계에서만 가능하다고 여겨졌다. 이들은 ‘조셉슨 접합’(두 개의 초전도체 사이에 매우 얇은 절연층을 끼워 넣은 구조)을 이용한 전기 회로를 만들어 그 안의 전자가 마치 원자처럼 양자역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거시 세계에서도 양자역학적 현상이 일어난다는 점을 보여줬다. 이들의 연구 성과로 양자 정보의 최소 단위인 ‘큐비트’를 초전도 회로를 이용해 인공적으로 구현할 수 있게 됐다. 최근 구글과 IBM 등 빅테크가 개발 중인 양자컴퓨터를 만들 수 있게 해준 직접적인 원천 기술이라는 평가다.
노벨위원회는 이들의 업적을 ‘새로운 규모에서 양자역학을 접하도록 한 연구’라고 평가했다. 위원회는 “물리학의 주요 질문 중 하나는 양자역학적 효과를 보여줄 수 있는 시스템의 최대 크기”라며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은 전기 회로로 실험해서 ‘양자역학적 터널링’과 ‘양자화된 에너지 준위’ 모두를 손에 쥘 수 있을 정도로 큰 시스템에서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정연욱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현대 컴퓨터와 모든 전자 기기의 기반이 된 ‘트랜지스터’를 개발해 기존의 진공관 시대를 끝낸 것과 비교할 수 있다”며 “이들이 양자컴퓨터의 과학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고, 언제든 노벨 물리학상을 받을 수 있는 학자들로 거론돼 왔다”고 설명했다.
양자역학 원리에 기반한 양자컴퓨터의 계산 수준은 기존 컴퓨터와 차원이 다르다. 기존 컴퓨터가 우주 나이보다 긴 시간이 걸리는 문제를 양자 컴퓨터는 1초 만에 답을 내놓을 수 있다. 기존 컴퓨터는 모든 정보를 0 또는 1이라는 비트 단위로 처리하지만 양자컴퓨터는 큐비트 단위를 사용해 정보를 0과 1이 동시에 존재하는 ‘중첩’ 상태로 문제를 수백, 수천 개씩 순식간에 풀어낼 수 있어서다.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면 난치병 치료, 노화 해결, 우주의 비밀 등을 푸는 데도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 때문에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IBM 등 빅테크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해 이를 개발하고 있다.
강광우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