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은 제조업 비자(Manufacturing Visa) 도입 필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유럽, 캐나다 등 주요 제조 투자국들의 현실을 알고 있고,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23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브라이언 켐프(61) 조지아 주지사는 중앙일보에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를 나누면서 논의한 ‘제조업 비자’ 구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조업 비자는 지난 9월 미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한국인 근로자 체포·구금사태 이후 켐프 주지사가 내놓은 해법이다. 켐프 주지사는 사태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중앙일보 기자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켐프 주지사는 “미국 내 제조 공장에서 단기간 체류하며 장비 설치·교육을 담당하는 숙련 기술자들이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체류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조업 비자는 기존 IT 중심의 전문직 비자(H-1B 비자)와 달리 90일 이내 단기 체류를 전제로 한다”며 “현대차, 한화큐셀 등 첨단 제조업체의 수요를 반영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백악관도 이 사안을 인식하고 있으며, 한국 기업의 현장 운영에 불편이 없도록 제도적 해결책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그는 이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통화를 나눴다고 한다.
이번 방한은 조지아주 서울 경제개발사무소 개소 40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지난달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공장에서 벌어진 한국인 근로자 317명 체포·구금 사태 이후 신뢰 회복을 위한 행보다. 켐프 주지사는 한국과의 신뢰회복과 경제 협력을 위해 부인 마티 켐프 여사와 팻 윌슨 조지아주 경제개발부 장관 등 주요 관계자들과 23일부터 사흘간 한국에서 머문다. 중앙일보와의 만남은 조지아주 한국사무소를 통해 성사됐다.
이민단속으로 체포됐던 현대차-LG엔솔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 직원들이 애틀란타 공항으로 향하기 위해
9월 11일 미국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을 나서며 버스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체포·구금사태에 대해 “이번 사건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조지아 주정부는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고, 연방정부도 절차상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들이 불이익을 받은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연방정부, 한국 정부, 그리고 관련 기업들과 협력해 문제 해결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켐프 주지사는 이날 장재훈 현대차 부회장,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 등과 잇따라 면담했다. 그는 “현대차와는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며 “메타플랜트(현대차 조지아 전기차 공장) 진행 상황과 향후 계획, 그리고 현지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중점 논의했다”고 말했다.
특히 조지아주는 현대차 메타플랜트 인근에 ‘Hyundai Mobility Training Center of Georgia(현대 모빌리티 트레이닝 센터 오브 조지아)’라는 최첨단 인력개발센터를 신설했다. 켐프 주지사는 “이곳에서 협력사 직원들이 실무 중심의 교육을 받게 된다”며 “조지아의 ‘퀵스타트(Quick Start)’ 프로그램이 세계 최고 수준의 훈련을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켐프 주지사는 인터뷰 동안 “한국 기업은 조지아 기업”이라는 자신의 철학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본사가 한국에 있어도 조지아에 공장을 세우고 사람을 고용한다면 그건 조지아 기업(Georgia based)이라는 뜻”이라며 “우리는 착공식부터 확장까지 모든 단계를 함께한다”고 했다.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주 주지사와 마티 켐프 여사 모습(오른쪽부터). 사진 조지아주
켐프 주지사는 “조지아 내 한국어 사용 인구가 미국 내 세 번째로 많을 정도로, 한국의 존재감이 커졌다”며 “한국의 투자가 조지아의 경제 구조와 문화를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이어 “1996년 SKC, 2006년 기아차 공장 이후 이어진 투자가 이제는 세대 간 협력으로 발전했다”며 “한국과 조지아의 관계는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니라 가족 같은 파트너십”이라고 했다.
이번 방한이 2019년 취임한 이후 세 번째라는 그는 한국 독자들에게 “조지아는 언제나 친기업적(pro-business)이고, 해결 중심적인(solutions-oriented) 파트너로 남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아울러 “좋은 일은 함께 축하하고, 어려움은 함께 극복하는 게 진정한 우정”이라며 “한국은 조지아의 특별한 친구이며, 앞으로 40년, 그 이상 함께 걸어갈 것”이라고 미소지었다.
조지아주는 미국 남동부의 중심에 위치해 세계적 수준의 인프라를 자랑한다. 하츠필드-잭슨 애틀랜타 국제공항과 북미 최대 단일 컨테이너 터미널인 사바나항을 기반으로 미국 전역과 글로벌 시장에 접근하기 용이하다. 주정부의 기업 친화 정책과 낮은 운영비, 풍부한 노동력은 한국 기업이 조지아주를 선호하는 이유다.
조지아주는 1985년부터 서울에 상설 대표부를 운영하며 긴밀한 관계를 맺고있다. 한국은 1976년부터 애틀랜타에 총영사관을 두고 있다. 애틀랜타는 미국 내 한인 인구가 많은 도시 중 하나로, 조지아주와 한국은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상호 존중과 협력을 기반으로 긴밀하고 신뢰받는 파트너십을 구축해왔다고 조지아주는 설명했다.
서울= 한지혜 기자 han.jeehy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