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부장 이야기 슬프고 짠해서 못 보겠어요.”
최근 드라마 ‘서울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가 중·장년의 현실을 너무 잘 반영하고 있다며 공감을 사고 있다. 작품은 대기업 부장으로 일하던 주인공 김낙수가 희망퇴직 후 재취업과 노후 준비를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담았다. 실제 통계로 보면 이런 ‘김 부장’이 겪는 일들은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희망퇴직이 줄잇고 정년연장 논의가 진행되는 한국 사회에 이 드라마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말한다.
ⓛ주된 일자리 퇴직 연령 52.9세
국가데이터처 ‘2025 고령자 부가조사’에 따르면 주된 일자리의 평균 퇴직 연령은 52.9세이며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의 근속 기간은 남성 기준 21년 6개월이다. 드라마 속 김낙수 부장도 53세(1972년생)에 25년간 몸담은 대기업 통신사를 떠나 한국 직장인의 전형적 경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를 그만둔 이유로는 ‘사업 부진·조업중단·휴폐업’이 25%로 가장 많아 자발적 퇴직보다 회사 사정에 따른 이직이 더 흔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부장이 동료 20명 구조조정 요구를 거부한 뒤 결국 희망퇴직을 택하는 장면도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한다.
②사무직 69.5% 경력 못 살려
통신사 영업직으로 경력을 쌓아 온 김 부장은 자신의 이력을 살린 재취업에 번번이 막힌다. 동생 부부에게 일자리를 부탁했다가 무시당하는 굴욕도 겪는다. 결국 동료와 함께 세차장을 창업하며 ‘제 2의 인생’을 시작한다. 현실에서도 주된 일자리를 떠난 사무직 근로자가 같은 분야로 재취업하기는 쉽지 않다. 고용노동부가 2023년 고용보험 데이터베이스로 1964~1974년생의 직종 이동을 분석한 결과 사무·서비스판매직의 재취업자 가운데 69.5%가 다른 직종으로 옮겼다. 사무직 근로자 10명 중 3명만이 기존 경력을 이어갈 수 있었고 나머지는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는 뜻이다.
③부동산 자산 비중은 74.6%
김 부장은 퇴직금을 제외하면 서울 강동구 아파트가 사실상 전 재산으로 설정돼 있다.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도 60세 이상 가구의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81.2%로 가장 높았고 50대도 74.6%에 달해 자산이 부동산에 편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에 자산이 묶이면서 현금흐름이 부족해 노후 대비가 미흡한 경우가 많다. 실제로 50대의 70%가 노후 준비를 하고 있다고 답했지만 대부분은 국민연금에 의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40%대인 점을 고려하면 충분한 노후 대비로 보기는 어렵다. 그런 김낙수 부장은 노후를 위한 상가 투자 임대소득을 노리다 사기를 당하는 장면도 나온다.
④고령층 73.4세까지 일하고 싶다
결국 김 부장은 세차장 창업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정년이 없는 일자리여서 60세 이후에도 일할 여지가 크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55~79세 고령층 경제활동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섰고 이들 중 약 70%가 계속 일하기를 희망했다. 희망 근로 연령은 평균 73.4세였다. 이런 흐름을 고려하면 김 부장도 새로운 직업으로 노동시장에 오래 머물 가능성이 크다.
올해 대기업의 희망퇴직이 잇따르는 점도 드라마의 현실성을 뒷받침한다. 김 부장이 드라마 속 몸담았던 통신업계는 실제 현실에서 희망퇴직을 단행 중이다. 지난해 10월 KT가 희망퇴직을 실시했고 올해는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가 진행 중이다. 이 외에도 현대제철, LG디스플레이, 롯데칠성음료 등 주요 기업들도 최근 희망퇴직을 단행하며 구조조정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희망퇴직으로 2차 노동시장에 진입한 ‘김 부장’의 사례는 현재 논의되는 정년연장 정책에도 시사점을 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법이 정년을 늘려도 호봉제 등 현 인사체계가 바뀌지 않으면 희망퇴직 조기화만 심해질 수 있다”며 “실제로 오래 일하게 만드는 정년연장이 되기 위해서는 임금체계 개편을 통한 연령이 아니라 직무·역할·성과 중심으로 임금을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덕호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교수는 “임금체계 개편 등 생산성을 고려하지 않은 법적 정년연장은 청년 채용 축소로 이어질 뿐 아니라 중·장년층도 결국 희망퇴직 등으로 노동시장에서 밀려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 부장이 경력을 살려 재취업하지 못한 이유 역시 노동시장의 경직성으로 기업이 중·장년층 채용을 꺼리기 때문”이라며 “일률적 정년연장은 이런 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연주(kim.yeonjoo@joongang.co.kr)






